My Story/삽질인생

이런 사람이었던가....

띵.. 2017. 3. 31. 13:59

무척이나 쓸까말까 고민했는데....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것 같아서 글을 쓰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마음도 같이 비워졌으면 좋겠는데......

어제는 참으로 충격적인 하루였다. 내 아버지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꺼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 내 어머니에게 대한민국 현대사를 배웠다. 그들은 그냥 평범하고 하루하루가 힘겨운 그런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이자 어머니였다. 그들은 TV에 나오던 대통령의 얼굴을 보며,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총칼로 죽인, 수많은 사람들을 지옥에 던져넣은 나쁜 놈"이라고 가르쳐 줬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그렇게 가르쳐줄 때에는 그 나쁜 놈이 대통령을 그만 둔 때였다. 그 나쁜 새끼가 바로 전두환이다. 그 새끼 끌려들어갈 때, 우리 부모 역시 사필귀정이라 했다. 물론 박정희에 대해선 독재는 했지만 나름 먹고 살게 해줬다던가, 전라도 사람들은 독하다... 등의 찬양이나 편견에 가까운 이야기도 해주셨지만, 그래도 평균 이상의 공정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셨다고 생각한다. 난 그런 나의 부모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보수적이지만, 내 부모는 저 뉴스에 나오는 편협한 시각의 노인들과는 다르다고.

어제 그 믿음이 와장창 깨졌다. 뭐, 엄마한테 "니 아빠 이상해졌어. 저런 사람 아니었는데"라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래도 저 티비에 자주 나오시는 저런 분들과는 다른 분이라고 믿었는데....  어제 오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장실질심사 출석 뉴스를 같이 보던 와중에 아빠 입에서 나온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래, 하필이면 전두환 그 개자식이 티비에 나온 탓이다. 전두환 그 개자식도 잘한 게 있다는 아버지의 말에 발끈한 나의 잘못도 크다. "뭘 잘했는데? 자국민 총칼로 죽인 거?" 그랬더니 "그러게 왜 데모를 해. 그 때 그렇게 안 했으면 이북 놈들이 쳐들어왔어."래..... 아, 아버지... 저한테 5.18을 가르쳐 주신 건 당신이셨어요. 그 땐, 그렇게 말씀 안 하셨잖아요. 내 기억에 오류가 난 거에요. 당신의 생각이 바뀐 거에요. 하고 싶은 말도 많고, 할 말도 많았지만 말문이 막혀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우리 엄마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입이 딱 벌어졌다. 둘의 표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헐~"과 "헉!"의 중간쯤? 거기에 더 대박은 "놀러가다 죽은 걸 가지고 왜들 호들갑인지. 저기에 쏟아부은 세금이 얼만지... ". 충격, 충격, 충격. 내 주변에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난 세월호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나는데.

헌재에서 말했지. 국민 모두가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나는 그날을 기억하는 국민 한 사람 중 하나다. 힘들게 임신했는데, 쌍둥이란 소릴 들었고. 그렇게 소중하게 품에 안은 아이들이 "다운증후군"일 확률이 높다는 얘기에 통곡하고 울다가 다행히 양수검사에서 이상없단 소견을 받은지 얼마 안되는. 지긋지긋한 난임 병원을 졸업하고 새 병원 예약날을 잡은 그런 평범하지만 행복했던 어느 날. 아침 늦게 일어나 TV를 켰더니 여객선이 침몰해서, 하루 종일 뉴스만 붙잡으며 살아야했던 그런 날이었다. 그 때 나는 너무 많이 울어서 제정신이 아니었었다. 초조하게 생환 소식을 기다리며 울던 수많은 가족들이 안타깝던 그런 날이었다. 그 때 당시만 해도 쌍둥이였던 내 작은 아이가... 얼굴도 못 보고 사라진 후에야... 그 아픔이..... 너무나 절절하게 다가온다. 얼굴도 못 본 아이도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는데. 같이 보낸 수많은 시간과 추억들을 잃어버린 부모들은, 가족들은. 지금의 나에게 세월호는, 손에 잡아보지 못한 행복이자, 아픔이자, 그런 내 아픔 이상을 느꼈을 가족들에 대한 한없는 동정, 미안함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세월호만 보면 눈물이 난다. 뭘까, 그냥 내가 너무 감정이입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난 그들의 아픔을 그냥 남의 일-지금도 남의 일이지-쯤으로 생각해서 너무 가볍게 여긴 건 아닐까 싶은, 그 땐 내가 너무 행복해서 당신들의 아픔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싶은... 그런 감정?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가장 큰 것 같다.

그런 내 앞에서, 뱃 속에서 열흘을 품고 있던 금쪽 같은 자식을 잃은 내 앞에서 "놀러가다 죽은 애들"이란 표현을 쓰다니. 물론 내 아버지가 이런 나의 복잡하고 미묘한 속내까지 알지 못했겠지만, 나는 참 배신감이 크다. 인터넷에서 그런 표현들을 많이 보긴 했지만, 내 눈 앞에서 그런 얘기를 듣게 될 줄이야.

웃으면서 아버지에게 어디가서 그런 소리하면 맞아 죽어요. 집에서만 하세요. 라고 하긴 했지만, 실망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것이 성별의 차이인지, 세대의 차이인지, 이념의 차이인지, 가치관의 차이인지, 진영의 차이인지... 이런 저런 생각들로 고민을 많이 해봤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실망스럽다. 배신감까지 느낀다.

이것이 박정희의 위력인가? 박정희의 유령이 이렇게 많은 우리 부모 세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인가. 그래서 삼성동 누군가의 자택엔 지켜드리지 못해 송구하다는 어르신들의 울부짖음이 매일 끊이지 않는 것인가? 그러고보면 가장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시어머님이 가장 이념적으론 깨어있으셨던 모양이다.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도 가장 흔들리지 않는 어르신은 우리 시어머님이다. 박근혜에 대한 신뢰나 믿음 같은 것도 없으셨고. 연령으로 보면 가장 박정희에 대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을 연령대인데. 무엇이 내 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차이를 만들었나? 우리 엄마가 이번 시국을 통해 다 버리고도 박정희에 대한 믿음만은 버리지 않았던데. 그런 걸 보면 성별의 차이는 아닌 것 같고.

또 길을 이상한 곳으로 뚫어버렸네... 조리있게 말하는 법은 언제 배우는 것이냐. 그래도 뭐, 쓰고 나니 홀가분하다. 이 글 쓰면서도 참 많이 울었는데... 다시 읽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글엔 나의 상처들이 너무 많이 있다.

한동안은 부모님과 정치 관련 소재는 피해야 할 것 같다. 서로에게 상처만 줄 것 같아서. 그래도 왠지 시어머님과는 서로 상처 안 주고 잘 얘기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오히려 남편보다 어머님이 정치에 대한 소신도 확실하신 것 같고. 저런 거 봐봐야 뭐하냐 맨날 똑같은 소리, 짜증난다...라고만 하는 남편보다는 어머님이 뉴스도 더 열심히 보시고 고민도 많이 하시는 것 같고. 단순히 지지하는 후보가 같은가 아닌가 그런 문제가 아니라, 어머님이라면 왜 내 부모는 박정희를 좋아하나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해줄 것만 같다. 기회가 오려나? 시부모와의 정치토론도 싸움나는 지름길이라던데 ^^;;;;

그래도 난 해답이 필요해, 이 갈 곳 없는 배신감과 실망감을 풀어줄 해답이 말야. 해답을 얻어서 다시 아버지를 믿고 존경할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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