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

[DVD/애니] TV판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띵.. 2004. 9. 20. 06:22
(2004. 09. 14 작성한 포스트)













원작 카와모리 쇼지 外
감독 아카네 카즈키
제작 선라이즈
출연 사카모토 마야아, 세키 토모카즈,
미키 신이치로, 오오타니 이쿠에, 나카다 죠지, 타카야마 미나미, 이이즈카 마유미,
차후린, 겐다 텟쇼, 야마노우치 마사토, 오오츠카 아키오, 사카키바라 요시코 外
최덕희, 강수진,
이규화, 이선, 손정아, 박영희, 이인성, 민응식,
배정미, 박지훈, 황일청, 이윤영, 최원형, 서광재 外
음성 2.0ch
평점 DVD 메뉴구성 ★★★ 스토리 ★★★☆ 화면 ★★★ 음향효과 및 사운드 ★★ ★★☆
성우연기 ★★★★☆ 서플 ★★★ 총점 ★★★☆

(첨부된 사진은 에스카 한정판에 딸려온 엽서. DVD 자켓과 동일해서 올렸음)

이제사 쓰게 된 에스카플로네 후기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동생 컴이 제대로 돌아갈때 후다닥 쓰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에스카플로네에 대해 쓰다보면 참 난감함을 느낀다. 솔직히 어디서부터 써야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만화를 좋아하고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고딩시절, 저녁시간에도 TV를 켜놓고 세인트 테일을 보던(...합반이었음에도 저런 순정 애니가 먹혔던건 어디까지나 포니테일의 괴도란 설정 덕분이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런 나였으므로, 지금도 아마 TV 채널을 돌려가며 열심히 애니를 봤을꺼다.
그렇지만 내가 .. 불법 채널까지 동원해가며 죽어라고 애니를 보게된, 여기에 한 수 더떠 성우에까지 홀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누가뭐라고 해도 에스카플로네다. 너무나 매력적인 메카닉과, 고풍스러운 전투씬. 여기에 순정만화의 요소까지 도입한, 나의 취향을 팍팍 찔러대는 저 애니를 우연히 TV의 예고컷을 보고 알게 된 그 순간! 내 운명은 결정됐던 것이다.
방학 중에 방영했기 때문에, 난 이 애니의 방영일에 맞추어 다음학기 시간표까지 변경했다. 아마도 화, 수 요일을 텅텅 비워서, 집에서 편안하게 방송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 이게 왠 날벼락! 개강후 일주일 만에 방영시간이 수, 목으로 변경... 나는 주변 자취하는 친구들에게 밥을 사줘가며 녹화요청을 해야했고. 녹화해주기로 한 친구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휴학하게 되어... 걸국 난 그 애니를 끝까지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1년 후, 집에 전용선이 깔린 것을 기회로 이 애니를 전부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약간 느릿느릿 하지만 옆에 메트로놈이라도 있는 건지 박자를 맞춰가며 싸우는 메카닉은 고풍스러우면서도 중세를 떠올리게 해서, 롤플레잉 게임광인 나의 향수를 자극했고. 멋진 기사와 열혈소년 사이에서 고민하는 히토미를 보며, 이봐! 반은 두고 바람피지 마!! 하며 광분하는 내가 있었고. 마지막에 울먹이면서 "절대 잊지 않을테니까" 하며 떠나는 히토미를 보면서 바보 같은 반 녀석!! 이라고 훌쩍이는 내가 있었고. 마지막에 펜던트를 목에 걸고서 환한 미소를 짓는 반을 보며.. 아아, 모든 게 끝났구나 했던 내가 있었고...
뭐랄까, 시기적으로 딱이었단 생각이 든다. 다시 에스카를 만났을 때의 난, 심신에 활력부족. 만사 귀찮음. 되는 일 없음 상태였으니까. 그 때 우연히 내 취향의 애니를 만났고. 그게 또 절품이라 반하지 않을 수없었다는게 될까?

그렇지만 찬찬히 뜯어놓고 보면, 준작이지만 걸작이나 명작은 될 수 없는 그런 애니다. 영원히 2등이란 말이다. 같은 시간대에 방영된 에바가 지금까지도 여러사람에게서 오르내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놓아주지 않는 반면, 에스카는 방영시부터 에바에 밀려, 사람들의 눈길을 확! 하고 잡아끈 적이 없는 작품이다. 물론, 작품 자체만 놓고 보면 꽤 잘 만들어 졌지만 그것 뿐으로, 자신에게 있어 최고의 애니! 라고 질문받았을 때 에스카플로네를 얘기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에스카는 범작이 될 수 없는 준작이다. 그리고 영원히 명작이 될 수 없는 준작이다. 이 어정쩡함이 에스카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장르면에서도 그렇다. 메카물이라고 하기엔 히토미의 심리상태, 특히 애정문제가 작품의 전면에 부각되어 있다. 그녀의 마음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가가 작품의 흐름을 결정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순정인가? 순정만화에 부속으로 딸려있는 메카물이라고 하기엔 역시나 주인공의 메카인 에스카플로네의 존재가 너무나 크다. 이 애니의 가장 큰 소재거리인 아틀란티스의 힘은 환상의 달에서 온 이방인 히토미와 용. 이 둘이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어정쩡함이 잘 표현되어 완벽하게 혼합이 되었다면 필시 명작이 되었을테지만, 에스카는 어정쩡함으로 그쳤기 때문에 명작이 될 수 없었다. 이 점이 에스카를 좋아하는 나로선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룡의 무늬라던가, 환상의 계곡이라던가 곳곳에 사용된 CG는, 역시나 제작연도(1996)가 말해주듯 시도는 좋았으나 어색함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사용된 CG는 나중에 같은 선라이즈 제작의 명작 "카우보이 비밥"에서 멋지게 화면과 조화되는 경지에 오르게 되지만. 셀 화면도 TV 애니사상 특색있게랄까? 주인공 얼굴이 망가짐 이란게 굉장할 정도여서 무척 놀랬다. 물론 셀화가 엉망이 되서 얼굴이 망가진 일도 꽤 많지만(최유기라던가 최유기 리로드라던가 최유기 건락같은.. ) 일부러 주인공 얼굴을 짜부러트린다고 해야할까? 특히 반과 디란두의 경우가 그런데, 이들이 광기에 사로잡혔을때의 얼굴은... 실로 주인공과 주요 캐릭터를 저렇게 만들어도 되는거야?? 싶을 정도로 험악하다. ... 하드가 망가지지 않았다면 잽싸게 꺼내와서 그 실례를 보여줄텐데...

에스카의 음악은 이야기 하지 않겠다. 한다는 것 자체가 사족같으니까. 칸노 요코와 사카모토 마아야 콤비가 만난 것도 이 작품이었고. 이것만으로도 에스카가 애니 음악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하겠다. 덧붙여서 에스카 OST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 OST다. 물론 칸노 요코상의 다른 작품 카우보이 비밥이라던가, 나의 지구를 지켜줘 역시 내가 좋아하는 애니 음악이긴 하지만 밝고 경쾌한 음악이라던가(예를 들면 1st의 Wing이라던가 3rd의 I recommend instincts 라던가) 음침하게 시작해서 갑자기 밝아지는 White Dove, 그리고 전투때마다 등장하는 Dance of Curse같은.. 일일이 꼽기도 벅찬 곡들이 아주 많이 있다. 물론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음침도가 가장 높은 2nd. 딱히 이거다 하는 곡은 없지만 에스카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장면에 쓰인 곡들이 이 앨범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늙어버린 나에 대한 잡상이랄까.
이번에 에스카를 새로 보면서 무덤덤해진 내 자신에 대해 깨달아버렸다. 난 예전부터 "사랑의 황금률 작전"이후를 잘 보지 않았다. 이 부분부턴 페이스도 떨어지고 허무맹랑함이 저 사랑의 황금률 어쩌구부터 급격히 증가해서 말이다. 그래도 예전에 보았을 때는 무척이나 감동했었다. 특히 히토미와 유키리의 이야기. 자신에게만 눈을 돌리다보니, 자신보다 더 아파하고 있을 친구의 감정을 조금도 보지 못한 히토미를 보면서, 사람이란 이 순간순간에 못 보고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자신이 그것들을 놓쳐버려서 상처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걸 생각하고 나니 몹시 슬퍼졌다. 나에겐 같은 순간을 두번 사는 행운 같은 건 없다. 히토미는 운이 좋아서 자신이 가이아로 떠나기 하루 전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이 순간이 전부다. 그런 내가 지금 놓쳐버린 것들은 어디서 찾아야만 하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무덤덤하게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내가 있었을 뿐이다. 아무리 머릿속이 이 생각 저 생각으로 가득찼다고 해도, 어쩜 이렇게 무덤덤 할 수가. 그렇게 좋아했던 애니를 보고 있으면서도... 이건 억지야. 저긴 화면이 엉망이군. 윽! 또 버섯구름이냐? 니들 원자폭탄 맞은 게 그렇게 억울했어? ... 이런 감상을 느끼게 된 것을 에스카 탓을 하고 싶지 않다. 내 애정이 식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묘하게 쓸쓸했다.
다음번에 또 볼때는 어떤 감상이 들지. .. 지금보다 더 무덤덤하게 보지만 말아줬음 싶다.

.... 리뷰라고 하긴 좀 뭐한 글이 되었지만.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적었으니까... 이것으로 일착! 이라고 해둘까? .. 잊어먹기 전에 풀 메탈 패닉 감상글도 올려야 할텐데 말이지..

내 애정만으로야, 이 작품은 첫사랑과도 같은 작품이라 별 다섯개도 차고 넘칠 정도지만, 객관적으로는 세 개 반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최유기도 세 개나 줬는데 너무했나?? 최유기야 거의 성우점수지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