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삽질인생

우울함은 꼬리를 물고 온다

띵.. 2007. 3. 28. 00:57
처음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을 때는
한창 R 출판사와의 실랑이로 온 회사가 무한 야근에 돌입했던 시기였다. 이제는 그만둔(정확히는 사장님께 제거된듯한) 그.분.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내 나름대로는 겨우겨우 하루를 나고 있던 상황이었다. 무한 야근으로 모자라 특근-수당도 없는!!!-까지 해야했던 일요일. 나는 또 프로그램을 잘 알고 있단 이유만으로(단순히 실사표를 더 잘 돌린다는 이유만으로) 혼자서 현장이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일 없는 서가에 쳐박혀야만 했다. 그 전날 실사한 내용을 혼자서 입력하고, Mr.Ha의 도움으로 PDA를 사용해 팍팍 일을 진행해가며 또 하나 배웠다고 신나하던 찰나, 잠시 짬을 내여 Mr.Ha와 이젠 그만둔 고마운 준환씨를 만나러 갔던 것이 화근이 되어, 그.분.의 심술을 받아내야만 했고, 그.분.이 성질내며 가버린 뒤에 사무실 직원으로는 혼자 밤 10시 이후까지 남아 갖은 구박을 받아야만 했다. 죽은 PDA 데몬이 죽은 건 살릴 수 있지만, 서버 죽은 것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거기다 더 열받는 것은 내가 하루종일 작업했던 실사내용이 현 서가재고와는 틀리다는 이유만으로 이거 제대로 했어요? 란 말을 들었을 때.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마우스를 집어던지고 혼자 언덕길을 내려오며 정말 너무 서럽게 울었었다.
아, 여기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면 다른 사람 탓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처음 퇴사를 결심했다.

그 다음날 퇴사하겠다고 정장 딱 차려입고 오니, 그.분.이 먼저 선수를 치시더라. 결국 여차저차한 사정과 Mr.Ha의 감언이설에 속아 지금까지 버텼다. 버틴 건 좋았지만, 전산실에선 쫓겨나고, 이런저런 이유로 현장 3층으로 추방. 다시 사무실에 돌아오니 이번엔 전산실을 나가라고 하고 한동안 또 있었더니 이번엔 다시 1층으로 내려가란다.
그래도 참고 참았는데,

그리고 그날, 우리 회사의 잠정적 No.2이자 사장님의 오른팔인 경리과 모 대리님의 눈밖에 나서, 내가 몹시 따랐던 주임님이 그만두었다. 나이는 나보다 어렸지만, 음.. 한마디로 표현해서 소처럼 일하는 사람있었다. 동기인 다른 주임은 요령껏 현장에 떠넘기고 자기일을 조절할 줄 알았지만, 이 사람은 참 어리숙해서 옆에서 같은 사무실 직원이 놀고 있어도 혼자 떠맡는다. 내가 이만큼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혼자 허덕이는 그 분이 너무 안되서 "제가 뭐 도울일 없어요?" 라고 물어보다 배웠달까? 둘이서 막 이사온 현장 1층에 쳐박혀서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일을 하곤 했다. 초보로 아무것도 모르는 나 때문에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래도 단 한번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친절히 가르쳐주곤 했다. 전산다운 및 서버하드 자폭이라는 엄청난 일을 겪고 온갖 비난을 들어야 했을 때도, 함께 욕을 먹던 든든한 스승이자, 선배이자, 동지. 그런 노고에 보답한다며 진짜 생소갈비까지 사주시던 사장님이, 주임님 나가는 그날은 얼굴을 외면했단다. 그리고 주임님 나가자마자 모 대리님은 자신이 알고지내던 나와 동갑내기 여자를 바로 그 자리에 앉혔다. 주임님 나가고 한동안 얘는 왜 갑자기 나가서, 라던가 이런 것도 마무리 안하고 뭐한거야 란 소릴 들을 때마다 화가 났다. 소처럼 일해도 외면받은구나. 이 때 또다시 퇴사를 결심했다.

이번엔 입고장에 정식으로 발령을 내겠다고 한다. 내 나름대로는 꽤나 존경했던 오팀장님이 나를 위해서(예전부터 책을 좋아하는 내가 입고장~~ 입고장~~ 노래를 부르긴 했다) 발령을 내리셨다고 하는데..... 하아, 사장님 말씀을 들어보니 참 암담하다. 입고장에서 일 하고 사무실로 올라오란다. 아니, 차라리 그냥 입고장에 박아주시면 속이 편할 것 같아요. 입고팀이란 이유만으로 현장의 지긋지긋한 전화들 차단하면서 나름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리고 또 R 사 담당자의 출산휴가(혹은 영원한 퇴직)가 결정되면 난 또 올라와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R 사 담당자가 될꺼다.
세 번째로 퇴사를 결심했을 때, 그건 사람을 이리저리 회사편한대로 막 굴릴 때다. 사장님께선 재능있는 사원의 재능은 아낌없이 키워주시겠다는데... 제 재능을 도대체 뭐라고 판단해서 저를 이리 막 굴리시는 걸까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반품과로 내려갈 뻔 한걸 우리 전산관리실 톱 유대리 님이 강력하게 막았다고 한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반품과에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혹자들은 이런 나를 보며, 그건 xx 씨가 그만큼 새 시스템을 많이 알아서 그래, 라던가 그만큼 일을 잘 하니까 그렇지. 라고 하는데.... 그래? 훗, 내가 회사에 기여한 것보다 사고친게 더 많을꺼라고 느끼는건 그냥 내 자격지심? 내가 남들보다 나은게 있다면, 남을 설명해주기가 귀찮아서 내가 더 많이 떠맡고, 그러다보니 새 시스템이 익숙해졌다는 것 뿐이야. 뭐, 그것도 옛말이지. 지금은 뭐,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걸?

오늘 R 사 담당자 여직원이 무척 화가 났다. 책이 정확히 523부가 빈다. 전무님이 넌 담당자라면서 책이 비면 R 사 측에 얘기하지 뭐했냐며 막 뭐라고 했단다. 아침까지 전부 찾아내지 않으면 책임지라고. 여직원 당당히, "까짓거 책임지고 회사 그만두면 될꺼아냐? 내가 드러워서 안 다닌다"
사연은 이렇다. R 사가 얼마전 일산의 킨텍스에서 출판어쩌구 하는 행사를 하고 남은 도서를 우리쪽에 보냈다. 시간은 저녁 7시 넘어. 현장직원들은 다 퇴근한 상태에다, 여러 종이 들어왔는데 전부 섞여있더란다. 그리하여 입고당일 부수확인이 어려웠던 상태. 그런데 바로 다음날 신간출고를 해달란다. 우리 프로그램은 입고가 안 잡히면 출고전표가 자동으로 삭제되는 시스템이라 어쩔수 없이 R 사 요청대로 가입고를 잡고 현장에 재고 확인 요청을 한 여사원. 신간을 뿌리고 나니 책이 520부나 비더란다. 그래서 당황한 여사원, (사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다시 한번 책을 찾아보고 확인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확인안해줘, 토요일은 담당자 휴무, 월요일은 얘기하려했더니 R 사 직원들이 전부 행사나가.... 그리하여 한참 후에 책이 비어요~ 라고 이실직고 했다가 난리가 나고 전무님 노발대발. 니들이 물어내 사태까지 간 것.
답답한 여직원(임신 5개월의 몸으로) 오토피크 타고 현장을 누비며 책을 찾아보지만 없는 책이 나올리가 있나. 내가 전산으로 이런저런 방법으로 확인해봤지만 결론은 딱 2개로 신간을 500부나 오출고를 했던가, 아니면 책이 처음부터 잘못 들어왔던가. 여튼 이 문제로 100만원 차압당하게 생긴 사람이 약 3명;;;
이런 경우 사무실 직원이 뭘 할 수 있을까? 직접 현장을 누비며 책을 찾아봐야했을까? 아니면 열일 제치고 입고잡을 때 들어가 입고 부수를 확인해야 했을까? 우선 520부 빈다고 얘기하고 책을 다시 한번 찾아보겠다고 말을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게 어디 사무실의 책임인가?
그만두고 싶어지는 세 번째는, 모든 문제를 사무실에 넘기면서도, 사무실은 논다고 생각하는 모두의 정신상태이다. PDA로 할 수 있는 것도, 현장에서 얼마든지 전산처리 가능한 것도 전부 사무실에 떠맡기면서도 정작 사무실에서 확인해달라는 것은 출고가 늦어진다며 묵살, 여차해서 사건 터지면 전부 사무실에 내동댕이치는 전무님 이하 몇몇 현장 사람들. 덕분에 난 뭐든 일에 누가 시켰는지 사유가 뭔지를 기록하는 버릇이 생겼다.
뒤집어 쓰고 싶지 않으면 뒤집어 씌워라.... 이래야만 살아남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정말 퇴사를 결심했다.


퇴직하겠다고 말한 것이 토요일. 난 그동안 수없이 고만하고 전날은 밤을 세워가며 고민했는데, 다들 안중에도 없다. 니가 설마 나가겠어? 라는 분위기. 사실 나도 퇴사하면 앞이 캄캄한 것도 사실이다. 나이 30에 사무직 구하기가 어디 쉬운가? 대부분 나이제한에 걸려서 이력서도 못 넣어보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전문직으로 나갈 실력은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고 싶은 거다. 무섭고 불안하지만, 사람답게 사는 길을 선택하고 싶은거다.
............ 오늘도 애원하고 사정했지만, 다들 웃고만 있다.

당신들은 내가 필요한가? 뭐, 없는 것보단 낫겠지.
하지만, 난 당신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당신들을 원치 않는다.
내가, 날 사람답게 만들어주지 않는 이 회사를 원하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번에 산 와인을 마셨다.
양치질 하고 바로 마신건데 그래도 맛있다. 지난번 와인보다 덜 달지만, 뭐, 괜찮다는 느낌.
(그래도 내 취향엔 역시 지난번 캐네디안 드림? 난 단게 좋아~~~)
단지, 지난번 와인보다 도수가 높은건지, 아니면 내 기분이 이래서인지,
알콜이 확 도는 느낌.
술 기운에 잠을 잘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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