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각관의 살인 저자 아야츠지 유키토 역자 양억관 엮음 한스미디어 평점 ★★★★★ 이미지 및 도서정보 Yes 24
신본격 미스터리의 시작을 알린 시리즈 첫 작품으로 고전 본격 추리물에 오마주를 바친 아야츠지 유키토의 데뷔작이다. 십각관이라는 기괴한 배경, 독특한 이중 전개, 심리의 사각을 찌르는 대담한 트릭으로 미스터리 팬들 사이에 화제가 된 작품이다.
뭐라고 말을 하면 좋을지! 사건 마지막 페이지를 폈을 때, 응? 뭐가? 라며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읽다가, 어? 이거 뭔가 이상해? 라고 생각해서 앞을 다시 돌려보고서야 헉! 하고 말았습니다. 당했네요 ^^;;; 이 작품이 아야츠지 상의 데뷰작이라고 하는데, 시계관보다는 이 작품이 저한테는 더 흥미진진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1. 탐정이 나오지 않는다. 왓슨쯤에 해당할 사건 서술자 가와미나미(일명 코난군)는 등장합니다만, 탐정으로 보이는 사건 해결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실제로 시마다 키요시라는 추리를 맡은 사람이 나오긴 하지만, 제 안에서 이 사람은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와는 조금 다른, 제 느낌에는 "작가"의 대리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2. 두 개의 사건이 하나의 연관성을 가지고 진행되는 듯 서술자와 탐정역의 시점이 교차된다. 그리하여 독자는 탐정역쪽의 정보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려고 시도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이거나, 혹은 오히려 실제사건을 흐리려고 작가가 만들어 놓은 함정이다.
3. 범인이 어떻게 사건을 진행했는지를 보여주는 트릭(엘러리 퀸이나 홈즈류의 소설처럼 이를테면 "증거")이라기 보다는 독자를 속이기 위해, 교묘하게 작가의 의중을 숨기는 트릭들이 많다. 특히 이번 소설에서 어째서 등장인물들을 별명으로 부르는가에 대해 고민했는데, 그것이 처음엔 각 등장인물의 성격 등을 드러내기 위한 설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계획적인 것이었다 OTL
책 감상문을 쓰려고 Y서점 페이지에 들러보니, 트릭이 단순했다, 범인을 금방 찾았다 라고 하신 분들이 계시더군요. 도대체 그런 분들은 어떻게 찾아내신 건지 OTL 추리소설은 좋아하지만 범인찾기는 쥐약인 머리나쁜 띵..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범인의 이름이 나오고도 한참을 응? 뭐야?라며 한동안 이해 못했습니다. 저 진짜 바보인가 봐요. ㅠ.ㅜ
사회파 추리소설에 반기를 들고 이 작품을 쓰셨다는 아야츠지 유키토 상.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시작부터 추리소설 팬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그것이 아무도 없었다"와 비슷하게 시작합니다. 영국 여류작가의 어떤 추리소설처럼 나 역시 "심판"하겠노라 라면서 범인의 심경고백으로 시작하지요.
슬픈 사연이 있는 외딴 무인도에 찾아온 7명의 대학생들이 이유도 모른채 한사람 한사람씩 살해당하면서 서로가 의심하고 불안해 하는 모습은,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나, 김전일 소년의 사건부라는 유명한 만화의 한 작품을 떠올리게 합니다. 제가 추리소설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작품을 꼽는다면 단연 크리스티 여사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입니다. 이 책을 중 2 때 읽었었는데, 밤잠을 설칠 정도로 무서워했던 기억이 나요. "열명의 인디언 소년"이라는 기분나쁜 마더구즈 동요와 이에 맞춰 죽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공포. 이만한 작품이 있을까요? 섬세한 묘사와 치밀한 계산, 거기에 극적인 반전-이미 김전일 등을 통해 너무나 많이 우려먹혀 시시해져버렸지만-까지. 이 십각관은 구성은 비슷하지만, 묘사면에선 많이 떨어집니다. 문체가 많이 단촐해요 ^^;; 간단명료한 것은 좋지만, 뭐랄까 추리소설이니까 이왕이면 손에서 땀이 나게 하는 그런 서술과 묘사를 요구하고 싶어지거든요. 아, 누가 죽었어! 라며 등장인물들이 모여서 쑥떡대면 끝...이란 분위기는 좀 안타까웠어요. 크리스티 여사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명작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받는 심리적 압박을 너무도 섬세하게 그려내서 공포소설 못지않게 무섭게 그려냈기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이 작품이(정확히는 작가분이) 범인찾기나 추리하는 과정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보다는 독자와의 대결(^^;; )을 위해 글을 쓰시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인지 탐정역을 맡은 캐릭터 역시 포와로나 홈즈 등의 캐릭터들관 다르게 정의감의나 목적의식을 가지고 사건에 뛰어든다기 보다는 그냥 심심풀이, 시간 때우기 용으로 사건에 참여하거든요.
사실 요즘의 독자들이란 이미 수많은 고전과 영화들로 단련되어, 왠만한 트릭에는 속아주지도 않고, 어느 정도의 반전에는 놀라지도 않지요. 그런 닳고닳은 독자들을 위해, 논리로 무장하는 고교쿠도 시리즈가 있는 한편, 마술사의 손재주만으로 승부하는 카드마술처럼 눈에 띄지 않을 세세한 곳에 트릭을 감추어두는 이런 작품들도 있구요. 처음엔 등장인물들이 전부 추리소설 작가들로 등장해서 거리감을 느꼈다고 해야할지. 어색해서 좀처럼 작품에 몰입할 수 없었는데, 점점 가면서 그 이름에 걸맞는 등장인물들이 되어가더라구요. 특히 거들먹쟁이 엘러리. 사실 전 엘러리 퀸 시리즈 팬이기도 한데요. 그 작품의 탐정인 엘러리 퀸이 굉장히 사랑스런 캐릭터이거든요. 거들먹거리다가도 심하게 좌절하는, 상당히 사랑스런 캐릭터인데요, 등장인물 중 엘러리. 참으로 많이 닮은 것 같아서 정이 갔어요. 솔직히 포와로쪽에 가깝지 않나 싶기도 했지만요 ^^a 그래서 혹시, 이런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캐릭터들의 성격이나 앞으로의 운명을 나타내기 위한 작가의 설정이 아닐까 싶었는데, 설마 그런 이유였을 줄은 ㅡ.ㅡ;;; 뭐랄까 또 당했구나! 싶었어요.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만 할 뿐, 소설의 가장 맛있는 부분은 단 한구석도 차지하지 못한 가와미나미 군도 너무 불쌍했구요. 완전 전형적인 왓슨이었잖아요!
여하튼 간만에 몰입할 수 있었던 좋은 작품이었어요. 이 작품 읽기 바로 전에 읽었던 크리스티 여사의 "마술살인"은 저 같은 돌머리가 예상외로 쉽게 트릭도 범인도 찾아내서 이거 김샜다! 모드였거든요. 이 책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응??" 해버렸으니.... ㅠ.ㅜ 비웃지만 말아주세요.
덤으로 김전일 탓인지... 이런 김전일류의 작품들을 은근히 맘속으로 구박했다고 해야할까? 하찮게 여겼던 구석이 없지 않아 있었거든요. 이유는 무엇보다 억지라고 해야할까요? 독자에게 너무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김전일이 쫓아다니면서 이런 저런 증거와 사건진행을 보여주지만, 이건 정당한 게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왔거든요. 거기다 등장인물들이 매번 김전일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사지로 내몰리고, 범인과 피해자가 된다는 것도 맘에 안 들었구요. 특히 그 마지막 범인은 너야? 이러고 난 다음에 "훗, 잘못 집었어"라면서 범인과 김전일의 본격적인 두뇌싸움이 시작되는데 이게 또 왜 그리 맘에 안드는지. 마치 연극조라고 해야하나요?
"범인은 너야!" "훗, 네 말대로 내가 동기가 있다는건 인정하겠어. 그럼 xxx은 어떻게 설명할꺼지?", "그건 ooo이야! 그렇지 않아?" "그럴리가, 그렇다는 증거를 대봐!" "음홧홧홧, 이미 당신이 증명했어! 내가 이미 아까 손을 써두었지! 어때 범인!!!"
;;; 이런 패턴이 너무 반복되다보니 좀 질린 면도 없지않아 있구요. 그렇지만 사실 김전일에 나오는 트릭 중의 상당수는 추리소설 팬들이 고전으로 떠받드는 작품과 유사한 면이 많아요. 실제 보물을 찾아 일행들이 무인도로 가서 살해당한다는 이야기는 위에서도 말한 크리스티 여사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닮은 꼴이구요. 남들이 인정하는 작품만을 아무런 비평없이 받아들였던 것은 아닌가 조금 반성해봅니다.
그리고 이 십각관 이후 <관 시리즈>란 이름으로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물"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룬 작품들이 많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불행하게도 한국에서 판권을 구입한 건 이 십각관과 시계관 두 작품 뿐이라고 하네요. 다른 작품들도 한국에서 읽어볼 날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덤으로 "엘러리 퀸"시리즈도요. 추리소설 작가로는 애거서 크리스티나 코난 도일 못지않게 많이 알려진 작가인데 어째서 제대로된 출판물은 하나도 없는건지! 예전에 제가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이 절판이고, 현재 나오고 있는 책들 역시 예전의 책을 그대로 재판한 것이라 정말 엉망이라고 하네요 ㅠ.ㅜ 애거서 크리스티나 홈즈, 루팡 시리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으로 봐선 추리소설 붐이라 해도 좋을 듯 한데, 이번 기회에 좀 제대로 된 "엘러리 퀸"시리즈를 가지고 싶어요.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