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쯔시 : 손님이 없는 가게 앞을 비질하는거 묘하게 허무한 짓이구나. 아아, 관둬, 관둬.
(문 여는 소리) 흐흠, 그렇지만 손님이 없는 가게를 돌아보는 것도 허무해, 만큼 심하진 않지만 말야. 드라마 같은 데서 종종 보게 되는, 이렇게 한가한 가게에서 신문 펼치며 쳐저있는 셰프. 딱 나잖아. 하아.
(청결함만이 장점인 가게 안을 둘러보니 가게도 어딘가 죽은 듯 보였다. 도쿄 시타마치, 키타센쥬라고 하는 너무나 미묘한 장소에 있는 "리스토란테 야나세"도 옛날부터 이렇게 조용했던 건 아니다. 그렇다기 보단 딱 잘라 말해서 아버지한테서 나, "야나세 아쯔시"로 대가 바뀐 순간부터 이렇게 변한 것이 확실하다.
아, 그렇지만 슬슬 와인을 냉장고에서 꺼내놓지 않으면. 정말이지, 실온이 좋지만, 미지근한 것도 싫다던가 뭐라던가. 그 외엔 아무것도 떠들지 않으면서 와인에 관해서만큼은 시끄럽다니깐.
이것도 저것도 혼자서 하는 리스토란테... 어디에도 없으니 혼잣말도 늘 수 밖에. 알바라도 썼음 좋겠다. 그럴 돈도 없지만.
처음부터 혼자서 했던 건 아니다. 고령이었던 아버지가 살아 계었을 적엔 신뢰하던 치프, 소믈리에, 홀 담당의 노인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연이어 죽고 말았다. 사실 나는 혼자 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이미 "리스토란테 야나세"엔 단골이 딱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말하긴 뭣하지만 난 꽤 성실한 편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 뒤를 쫓아서 주방을 어슬렁거리다가, 18살 때 본격적으로 가게일을 돕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2년 간, 제법 노력했다. 그렇지만, 인간이란 <노력하면 뭐든 가능한>게 아닌가 보다. 깨닫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요리에 재능이 없다. 아버지가 살아있다고 굳게 믿고 취재하러온 미식가가 <희미한 맛 밖에 만들줄 모르는 아들 탓에 선대 셰프는 무덤 속에서 울고 있겠지> 라고 심한 말을 할만큼 맛이 부족한 모양이다. 무섭게도... 나는 그 차이를 조금도 모르겠으니, 재능이 없는 거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단골들은 의리로 들려주었지만, 여하튼 나이가 나이인지라 한 사람 죽고, 두 사람 죽고, 그게 아니면 점점 발길이 뜸해져서, 이제는 비둘기가 마구 울어대고 있다)
새가 있으니까 난 지금 혼자가 아니야 헤헷. 자아~, 비둘기 군, 런치 준비를. 오늘은 더우니까 냉방을 강하게 하고.
나카가와 : 어이,
아쯔시 : 아, 어서오세요.
나카가와 : 저 새라면 아까까지 제대로 울고 있었다고. 귀를 기울여 보라구.
아쯔시 : .... 에...... 아무 것도 안 들리는데요.
나카가와 : 그게 비둘기의 울음소리다.
(신문 펴는 소리)
아쯔시 : 아! 내 스포츠 신문.
나카가와 : 적어도 리스토란테라고 칭하면서 가게에 스포츠 신문 따위 놔두다니 어떨까 싶네. 여기가 동네 전파상이야.
아쯔시 : .... 읽으면서 그런 말을 해도;;;;
(하아, 멋대로 항상 앉는 창문가의 자리에 자리잡은 후, 마치 제 것인양 스포츠 신문을 읽기 시작한 이 남자 - 나카가와 상이 우리집의 유일무이한 단골이다. 그는 한 1년 전부터 가게에 오기 시작해서, 점심, 저녁으로 제 시간에 나타나)
나카가와 : A 코스
아쯔시 : ( 이 말 외엔 거의 하지 않는다) 네, 알겠습니다.
(왠지 밉살스런 말투이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와인에 대한 불평이랑 주문 말고 처음으로 이 사람하고 제대로 말한 것 같은.
1년 간, 주야로 내가 만든 - 맛있다고는 할 수 없는 식사에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고, 그러고보니 낮에도 밤에도 무척이나 느긋하고. 차림새는 꽤나 거치네. 나이는 30대 초반 같은데 사장이나 뭐 그런건가? 사장이라니.. 너무 엄청난 존재네. 근데 왜 사장님이 우리집에서 밥을? 그건 어쨋든 간에 저 사람 1년간 우리집에서 밥을 먹고 있다. "뭐지?", "미지근해", "너무 차"하고 "A 코스" 외의 목소린 생각이 안난다. 하아.. 왠지 엄청나게 으시시해졌다;; )
*****
아쯔시 : 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전체는 무와 클리플라워의 차가운 콘소메입니다. 젓가락의 스푼으로 드세요. 와인은 어떻게 할까요?
나카가와 : 매일 똑같은건 묻지 않아도 돼. 사시카이야와 미하니를 서로 번갈아 꺼내줘.
이 신분, 구독하는 건가?
아쯔시 : 아. 아... 아... 근처의 편의점에서 사오는 거에요.
나카가와 : 그날그날 점심 전에 자리에 놔줄 수 있어?
아쯔시 : 그건 상관 없습니다만. (술 따르는 소리)
(좋아하는 구단(?) 정도는 물어볼까 했더니 말붙일 틈도 없이 나카가와 상은 식사를 시작했다. 와인은 점심 때 반 정도를 마신 후 저녁 때 나머지 반을 마신다. 사실 우리집은 B코스도 C코스도 메뉴판에 써두기만 할 뿐 재료는 없다. 진.짜.로 나카가와 상 외엔 오지 않는다. 그렇게 맛없나 내 요리. 그럼 저 사람은 정말 뭐야? )
나카가와 : 잘 먹었어. 영수증 좀 끊어주지 않겠어?
아쯔시 : 아, 넵. (글씨 쓰는 소리). 저, 나카가와 상? (종이 뜯는 소리)
(사실 나는 이 사람에게 꼭 해야할 말이 있다. 얼마전부터 계속 말해야지~ 하고는 있었는데, 계속 말 꺼내기가 어려워서)
나카가와 : 흐으응?
아쯔시 : (오늘은 조금이지만 말을 나눈 걸로 용기를 내서..라고 맘 먹었는데, 이 불쾌한듯한 얼굴 앞에선. 하핫, 말이 안나와. 라고 할까, 이 사람, 눈을 돌려봤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먹고 난 후 심하게 기분이 나빠진 듯한. 아아... 접시는 언제나 대체로 깨끗하게 비어있다. 남기지 않는다는 것 맛있다고 생각하고 먹는건가? 그렇지 않으면 매일 점심, 저녁 같은 가게에서 밥 먹지는 않겠지? 나라고 해도 내가 만든 요리를 매일 먹는다면 싫다. 몸에도 안좋고 말이야)
나카가와 : 뭘 그렇게 중얼거리는 거야. 영수증!
아쯔시 : 아앗, 죄송합니다. (찌익) 감사합니다. (문 여는 소리)
(그리고 오늘도 결국 말도 못 꺼냈다. 말 안해도 되려냐? 아냐, 말 안하면 위험하겠지. 뭐, 괜찮아! 어짜피 밤에도 올꺼고. 그리고 난 밤까지 비둘기랑 단 둘이)
비둘기 군, 테이블 정리해 주지 않을래? 그래고 설거지랑, 저녁 재료 다듬기도. 난, 신분 읽을테니까이~ (문 여는 소리, 구두 소리) 에에엣, 무슨 일인가요? 나카가와 상.
니카가와 : 그 신문, 읽지 않을꺼면 줄래?
아쯔시 : 어디로 보나 제가 신문 읽고 있죠?
나카가와 : 옆에 가보니 벌써 다 팔렸어.
아쯔시 : 저... 그럼....
나카가와 : 미안. 아, 그리고 비둘기한테 말 거는거 그만두지? 습관이 되버리면 누군가 병원에 데려갈꺼야. 앞으로 두 번 더 듣게 된다면 우선은 내가 병원에 데려갈지도 몰라. (쎄게 문닫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