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09. 10 작성, 2004. 09. 20 수정한 포스트)
저자 오노 후유미
번역 김윤주
출판 좋은 세상 (2004.9)
첨부된 이미지는 고단샤에서 발행된 십이국기 11권 화서의 유몽 표지
(한국판은 올리고 싶지 않음 ㅡ.ㅡ;; )
평가 ★★★★☆
나온다던 소식에 오매불망 기다리던 십이국기 11권. 동영을 포함해 총 다섯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단편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짜임새가 좋았던 것 같다. 거기다가 왠지 지금까지 나온 시리즈의 이음새 역할을 하고 있어서, 잘 만들어진 한편의 피아노 소품을 보는 듯한 아기자기 한 맛이 있다.
이 책의 단편 중 <승월>, <서간>은 이미 애니로도 만들어져서, 약간 김이 빠진 감이 없지 않아있지만, 소설의 행간 사이사이 등장인물들, 특히 승월에서 <겟케이>의 고뇌는 정말 가슴이 아파서, 애니로 볼 때보다 훨씬 더 가슴에 와 닿는 것 같다. 누구보다 존경했던 사람. 그 누구보다 좋은 왕이 될꺼라고 믿었던 사람. 너무나도 결벽해서 조금의 죄도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 그런 그가 조금도 더러워짐 없이 옥좌를 지키는 사람. 그럼에도 어째서 백성들에게 가혹할 수 밖에 없었는지. 무조건 나쁘게만 느껴졌던 봉왕이란 사람을 조금은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역시 이 단편의 덕분이 아닌가 싶다.
재국의 이야기를 다룬 <화서>는 아직 보지 못해서, 그리 자세하게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역시나 오노 후유미다 싶을 만큼 섬세하면서도 잔인한 내용들이 책을 곳곳에 숨어있다. 특히 리코우와 후우칸이 나오는 <귀산>은 그런 섬뜩함을 느낄 수가 있는데, 말이 600, 500이지, 내가 그렇게 살아가며, 자신을 다스려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울지. 그러면서도 차마 옥좌를 내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옥좌에서 내려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오래 살았으면 살았을수록, 실감이 나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반대로 죽음을 동경하면서도 죽기로 결심하진 못할 것 같다. 결국 한번 옥좌에 오른 왕이 도달할 곳은 실도로 하늘이 죽음을 내려주길 기다리거나, 죽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다스려 끝없이 사는 길밖에 없다. ... 무서운 일이다. 인간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걸 해내고 있는 두 사람. (정확히는 한 사람과 한 가족이지만 ^^;;)
가끔 생각하는 건데, 현군으로 이름높은 연왕이 도를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왠지 쇼류님은 했다하면 철저하게 완벽히, 그것도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할 것 같거든. 안이 망한다면, 연왕이 하늘과의 내기를 해서라고 하는 리코우의 말에 쓴웃음을 짓게 되는 것은,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쇼류라는 사람과 딱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쇼류님도 그렇고 종왕일가도 그렇고 너무 완벽한 사람들 같단 말이야. 조금은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그래도 리코우, 본인을 앞에 두고, 처음부터 도 같은 걸 알았을리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아?? 쇼류님, 당신도 당신입니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신나게 웃지 말고 조금 반성을 하시는 것은 어때요??->반성이란 단어도 쇼류님 사전에 없을 것 같은 걸 )
십이국기 화서의 유몽이 이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라서, 기쁜 한편으론 허탈하다. 오노주상 역시 다나카상만큼이나 책이 늦게 나오는 듯 해서.. 그리고 왠지 십이국기는 생각나면 썼다.... 라는 느낌도 들고. (그러기엔 너무 작품이 훌륭하지만)
다음편은 언제 나오는 건지, 그리고 어떤 나라를 얘기하게 될지. 솔직히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인 요코님이 경을 어떻게 다스리는지도 보고 싶고, 대로 건너간 타이키와 리사이도 걱정되고, 망해간다던 류는 어떤 나라인지도 알고 싶고. 쇼류님도 못 당하는 범의 주종도 보고 싶고.... 그렇지만 왠지 요코님의 경우는 그런 멋진 초칙을 발표한 것만으로도 완벽하단 느낌이 들긴 한다. (그래도 멋진 요코님을 더 보고 싶은걸 T^T)
이번엔 좀 다른 얘기. 번역에 관한 이야기다. 난 일본어에 쩔어 있어서 그런지, 원 번역자셨던 siva님이 도노나 사마를 쓴 것을 전혀 어색하게 느끼지 않았지만, 일본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홈에 항의를 했던 분도 계셨지만, 이런 호칭을 설명하지 않은 것은-다른 대체할 용어도 없고 하니- 분명 번역가로서 잘못하신 것이지만, 일관성 있는 번역을 하셔서 읽는 사람으로선 꽤나 편했다. 물론 본인도 애정이 있으셨으니 무척 신경을 쓰셨겠지.
그렇지만 9권부터 바뀐 번역자는.. 솔직히 맘에 들지 않는다. 자신 이전의 번역자가 기린의 이름을 연기 대신 엔키, 연린대신 렌린이라고 했다면 이런 규칙을 일관되게 시리즈내에 적용시켜 줘야 하지 않을까? 먼저 나왔던 캐릭터들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뒀다고 하면, 다른 것들도 같은 규칙을 적용해서 렌린이라던가, 사이린 이라고 해석해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 물론 본인이 한자어라면 한국독음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라고 정해놓았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이번 11권은 그런 규칙조차 없다. 타이키가 연국을 방문하는 이야기인 <동영>을 보면, 그 상태가 심각하다. 타이키와 태왕이 이야기 할 때에는 분명 연린이었다. 그리고 타이키가 연에 도착했을 때도 연국의 왕에게 분명 "연린"이라고 하는데, 왕은 "렌린"이라고 한다. 이 무슨...
마지막 귀산에서도 그렇다. 리코우는 왜 일본식으로 읽고 쇼류님의 후우칸이란 이름은 어째서 "풍한"이라고 하는 건데? 번역의 가장 기본은 고유명사를 포함해 글에 나오는 용어를 통일성있게 해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새로 구입한 반지의 제왕 양장판은, 실로 그 규칙을 잘 따르고 있어서, 지명을 원어발음 그대로가 아닌 뜻풀이를 해서 -예를 들면 리벤델을 깊은 골이라고 한다던가, 이 외에도 너른골, 어둠의 숲 등등- 번역을 하면서 인명 역시 우리말로 표시했다. 스트레인져 대신에 성큼걸이 같이. 물론 여기에도 적당한 타협이 있어서, 한계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실로 멋진 번역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십이국기 11권은,.... 그런 규칙의 적용조차 엉망이다. "이전의 번역자가 이미 해 놓은 것은 어쩔 수 없이 이전 번역자를 따른다"라는 것이 원칙이라면, 풍한은 후우칸이 되었어야 한다. 덧붙여 "모든 용어를 한국식 독음으로"가 원칙이었다고 한다면 리코우는 절대 나올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한 페이지에서 같은 인물을 "연린"과 "렌린"으로 표기하다니 이건 읽는 사람 생각을 전혀 안하고 자기 편의대로 한 번역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물론 원작이 너무 멋진 작품이라 번역의 문제는 단순이 너무 예쁜 보석의 표면에 먼지가 쌓였다는 정도일 수 있겠지만, 멋진 작품을 망쳤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정말이지 이걸 한 번역자나, 이걸 감수하고 수정했어야 할 출판사나 전부 짜증난다.
다음번엔 좀 제대로 된 번역자를 써주길 바란다. 종이의 질이나 표지그림 같은 건 번역의 질에 비하면 정말 소소한 문제니까 말이다.
2004. 09. 20 덧붙여 <화서>편 감상
화서편을 읽고나서 꼭 써야지 마음 먹었는데, 이제사 쓰게 되었다. 읽고 나서 이해한 것은 11권 제목이 왜 화서의 유몽이었는지였다.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 잔인했다. <책망과 비난은 변화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긴 어려운 일이다.
결국 시쇼우는 무능했고, 무능한 왕은 용서받을 수 없기에 실도했다. 자신의 실도로 초조해진 그는, 결국 해서는 안될 죄까지 저질렀다. 그래도 그는, 결국엔 자신을 바로잡았다. <책망과 비난은 변화가 아니다>란 사실을 깨달았으므로 명군이 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는 그 자신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다. 자신은 죄의 댓가를 받기 위해 퇴위-왕의 퇴위는 곧 죽음이다-하면서도 끝까지 사이린만은 남겨 재의 공위가 길지 않도록 배려한다. 그는 상냥한 사람이었고, 영리했지만 무능했고, 그리고 강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
에이슈크. 자신의 동생이자 붕우이며 주인인 자의 실도에 안달하여, 그를 배신하고, 살인을 교사하고, 죄를 뒤집어 씌운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의라고 믿었던 사람. 시쇼우에게 사형당하더라도 자신의 정의로운 자로 남고 싶었던 사람. 결국, 그는 시쇼우의 죽음과 함께 남겨진 유언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결국 그는, 시쇼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죽음으로...
그리고 이 사람들 못지않게 가여운 신시. 현명하고 모든 걸 알고있던 그녀는, 그렇지만 아무것도 바로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사랑하는 아들과 조카를 동시에 잃었다. 잃는 아픔은 컸겠지만, 그녀는 그들이 죄를 바로잡을 수 있게 그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모습을 그냥 지켜본다.
화서의 유몽. 그 덧없음을 왠지 이 화서편으로 본 것 같다.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시쇼우의 얘기처럼, 왠지 모든 꿈들이 덧없게만 느껴진다. 강한 이상과 높은 기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결국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난 이래서 오노 후유미상의 글을 읽는게 무섭다. 너무 무섭다.
저자 오노 후유미
번역 김윤주
출판 좋은 세상 (2004.9)
첨부된 이미지는 고단샤에서 발행된 십이국기 11권 화서의 유몽 표지
(한국판은 올리고 싶지 않음 ㅡ.ㅡ;; )
평가 ★★★★☆
나온다던 소식에 오매불망 기다리던 십이국기 11권. 동영을 포함해 총 다섯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단편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짜임새가 좋았던 것 같다. 거기다가 왠지 지금까지 나온 시리즈의 이음새 역할을 하고 있어서, 잘 만들어진 한편의 피아노 소품을 보는 듯한 아기자기 한 맛이 있다.
이 책의 단편 중 <승월>, <서간>은 이미 애니로도 만들어져서, 약간 김이 빠진 감이 없지 않아있지만, 소설의 행간 사이사이 등장인물들, 특히 승월에서 <겟케이>의 고뇌는 정말 가슴이 아파서, 애니로 볼 때보다 훨씬 더 가슴에 와 닿는 것 같다. 누구보다 존경했던 사람. 그 누구보다 좋은 왕이 될꺼라고 믿었던 사람. 너무나도 결벽해서 조금의 죄도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 그런 그가 조금도 더러워짐 없이 옥좌를 지키는 사람. 그럼에도 어째서 백성들에게 가혹할 수 밖에 없었는지. 무조건 나쁘게만 느껴졌던 봉왕이란 사람을 조금은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역시 이 단편의 덕분이 아닌가 싶다.
재국의 이야기를 다룬 <화서>는 아직 보지 못해서, 그리 자세하게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역시나 오노 후유미다 싶을 만큼 섬세하면서도 잔인한 내용들이 책을 곳곳에 숨어있다. 특히 리코우와 후우칸이 나오는 <귀산>은 그런 섬뜩함을 느낄 수가 있는데, 말이 600, 500이지, 내가 그렇게 살아가며, 자신을 다스려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울지. 그러면서도 차마 옥좌를 내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옥좌에서 내려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오래 살았으면 살았을수록, 실감이 나지 않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반대로 죽음을 동경하면서도 죽기로 결심하진 못할 것 같다. 결국 한번 옥좌에 오른 왕이 도달할 곳은 실도로 하늘이 죽음을 내려주길 기다리거나, 죽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다스려 끝없이 사는 길밖에 없다. ... 무서운 일이다. 인간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걸 해내고 있는 두 사람. (정확히는 한 사람과 한 가족이지만 ^^;;)
가끔 생각하는 건데, 현군으로 이름높은 연왕이 도를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왠지 쇼류님은 했다하면 철저하게 완벽히, 그것도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할 것 같거든. 안이 망한다면, 연왕이 하늘과의 내기를 해서라고 하는 리코우의 말에 쓴웃음을 짓게 되는 것은,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쇼류라는 사람과 딱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쇼류님도 그렇고 종왕일가도 그렇고 너무 완벽한 사람들 같단 말이야. 조금은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그래도 리코우, 본인을 앞에 두고, 처음부터 도 같은 걸 알았을리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아?? 쇼류님, 당신도 당신입니다. 그런 말을 들었다고 신나게 웃지 말고 조금 반성을 하시는 것은 어때요??->반성이란 단어도 쇼류님 사전에 없을 것 같은 걸 )
십이국기 화서의 유몽이 이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라서, 기쁜 한편으론 허탈하다. 오노주상 역시 다나카상만큼이나 책이 늦게 나오는 듯 해서.. 그리고 왠지 십이국기는 생각나면 썼다.... 라는 느낌도 들고. (그러기엔 너무 작품이 훌륭하지만)
다음편은 언제 나오는 건지, 그리고 어떤 나라를 얘기하게 될지. 솔직히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인 요코님이 경을 어떻게 다스리는지도 보고 싶고, 대로 건너간 타이키와 리사이도 걱정되고, 망해간다던 류는 어떤 나라인지도 알고 싶고. 쇼류님도 못 당하는 범의 주종도 보고 싶고.... 그렇지만 왠지 요코님의 경우는 그런 멋진 초칙을 발표한 것만으로도 완벽하단 느낌이 들긴 한다. (그래도 멋진 요코님을 더 보고 싶은걸 T^T)
이번엔 좀 다른 얘기. 번역에 관한 이야기다. 난 일본어에 쩔어 있어서 그런지, 원 번역자셨던 siva님이 도노나 사마를 쓴 것을 전혀 어색하게 느끼지 않았지만, 일본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홈에 항의를 했던 분도 계셨지만, 이런 호칭을 설명하지 않은 것은-다른 대체할 용어도 없고 하니- 분명 번역가로서 잘못하신 것이지만, 일관성 있는 번역을 하셔서 읽는 사람으로선 꽤나 편했다. 물론 본인도 애정이 있으셨으니 무척 신경을 쓰셨겠지.
그렇지만 9권부터 바뀐 번역자는.. 솔직히 맘에 들지 않는다. 자신 이전의 번역자가 기린의 이름을 연기 대신 엔키, 연린대신 렌린이라고 했다면 이런 규칙을 일관되게 시리즈내에 적용시켜 줘야 하지 않을까? 먼저 나왔던 캐릭터들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뒀다고 하면, 다른 것들도 같은 규칙을 적용해서 렌린이라던가, 사이린 이라고 해석해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 물론 본인이 한자어라면 한국독음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라고 정해놓았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이번 11권은 그런 규칙조차 없다. 타이키가 연국을 방문하는 이야기인 <동영>을 보면, 그 상태가 심각하다. 타이키와 태왕이 이야기 할 때에는 분명 연린이었다. 그리고 타이키가 연에 도착했을 때도 연국의 왕에게 분명 "연린"이라고 하는데, 왕은 "렌린"이라고 한다. 이 무슨...
마지막 귀산에서도 그렇다. 리코우는 왜 일본식으로 읽고 쇼류님의 후우칸이란 이름은 어째서 "풍한"이라고 하는 건데? 번역의 가장 기본은 고유명사를 포함해 글에 나오는 용어를 통일성있게 해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새로 구입한 반지의 제왕 양장판은, 실로 그 규칙을 잘 따르고 있어서, 지명을 원어발음 그대로가 아닌 뜻풀이를 해서 -예를 들면 리벤델을 깊은 골이라고 한다던가, 이 외에도 너른골, 어둠의 숲 등등- 번역을 하면서 인명 역시 우리말로 표시했다. 스트레인져 대신에 성큼걸이 같이. 물론 여기에도 적당한 타협이 있어서, 한계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실로 멋진 번역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십이국기 11권은,.... 그런 규칙의 적용조차 엉망이다. "이전의 번역자가 이미 해 놓은 것은 어쩔 수 없이 이전 번역자를 따른다"라는 것이 원칙이라면, 풍한은 후우칸이 되었어야 한다. 덧붙여 "모든 용어를 한국식 독음으로"가 원칙이었다고 한다면 리코우는 절대 나올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한 페이지에서 같은 인물을 "연린"과 "렌린"으로 표기하다니 이건 읽는 사람 생각을 전혀 안하고 자기 편의대로 한 번역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물론 원작이 너무 멋진 작품이라 번역의 문제는 단순이 너무 예쁜 보석의 표면에 먼지가 쌓였다는 정도일 수 있겠지만, 멋진 작품을 망쳤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정말이지 이걸 한 번역자나, 이걸 감수하고 수정했어야 할 출판사나 전부 짜증난다.
다음번엔 좀 제대로 된 번역자를 써주길 바란다. 종이의 질이나 표지그림 같은 건 번역의 질에 비하면 정말 소소한 문제니까 말이다.
2004. 09. 20 덧붙여 <화서>편 감상
화서편을 읽고나서 꼭 써야지 마음 먹었는데, 이제사 쓰게 되었다. 읽고 나서 이해한 것은 11권 제목이 왜 화서의 유몽이었는지였다.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 잔인했다. <책망과 비난은 변화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긴 어려운 일이다.
결국 시쇼우는 무능했고, 무능한 왕은 용서받을 수 없기에 실도했다. 자신의 실도로 초조해진 그는, 결국 해서는 안될 죄까지 저질렀다. 그래도 그는, 결국엔 자신을 바로잡았다. <책망과 비난은 변화가 아니다>란 사실을 깨달았으므로 명군이 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는 그 자신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다. 자신은 죄의 댓가를 받기 위해 퇴위-왕의 퇴위는 곧 죽음이다-하면서도 끝까지 사이린만은 남겨 재의 공위가 길지 않도록 배려한다. 그는 상냥한 사람이었고, 영리했지만 무능했고, 그리고 강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
에이슈크. 자신의 동생이자 붕우이며 주인인 자의 실도에 안달하여, 그를 배신하고, 살인을 교사하고, 죄를 뒤집어 씌운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의라고 믿었던 사람. 시쇼우에게 사형당하더라도 자신의 정의로운 자로 남고 싶었던 사람. 결국, 그는 시쇼우의 죽음과 함께 남겨진 유언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결국 그는, 시쇼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죽음으로...
그리고 이 사람들 못지않게 가여운 신시. 현명하고 모든 걸 알고있던 그녀는, 그렇지만 아무것도 바로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사랑하는 아들과 조카를 동시에 잃었다. 잃는 아픔은 컸겠지만, 그녀는 그들이 죄를 바로잡을 수 있게 그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모습을 그냥 지켜본다.
화서의 유몽. 그 덧없음을 왠지 이 화서편으로 본 것 같다.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시쇼우의 얘기처럼, 왠지 모든 꿈들이 덧없게만 느껴진다. 강한 이상과 높은 기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결국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난 이래서 오노 후유미상의 글을 읽는게 무섭다. 너무 무섭다.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만화] 만화책 리뷰 몰아보기 (8) | 2004.10.19 |
---|---|
[바람의 나라] 우울한 글 쓴 김에 잠시 <바람의 나라> 관련해서 (8) | 2004.10.07 |
[월간지/만화] Herb 8(창간호), 9월호 (4.5) (0) | 2004.09.20 |
[도서/어학] 애로우 잉글리시 (미완) (0) | 2004.09.20 |
[소설] 다자이 오사무 - 고발 (0) | 2004.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