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역자 ; 정창
2002년 시공사 출판
참고로 열린책들에서 같은 역자로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을 출간
평가 ★★★☆
(시진은 Yes24)
이 책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접하고 그동안 줄곳 보고 싶다~보고 싶다~ 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됐다. (어제 결국 마두 도서관 대출증을 만들었거든 ^^ )
이 책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 해보면, 스페인 대중 문학의 선두 주자로 현재 우리나라에는 열린 책들과 시공사에서 같은 역자와, 같은 판형, 같은 양장본 형식으로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이라는 책과 함께 쌍둥이처럼 찍어낸 책이다. 플랑드르의 그림은 저자가 19991년, 이 책은 1993년 저술한 책이라고 한다.
사실 프랑드르 거장의 그림은 2002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꽤 흥미깊게 읽었다. 단지 신문에서 이 책의 소개를 봤을 때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그림에 대한 교양지식이 형편없는 대다가 그 그림의 비밀을 파헤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체스에 대해 난 일자무식이다. 물론 말들의 진행 규칙에 대해선 알고 있지만, 그걸 텍스트만으로 이해하기엔 나의 공간지각력과 상상력이 부족한 머리가 단단히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로 뒤마클럽은, 한번 찍은 책에 대한 나의 집요함이 없었다면 결코 읽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이 그랬듯이, 손에서 뗄 수 없게하는 무언가가 있다. 탐정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이야기가 전개 되고 있는 이 책은, (역시나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처럼-앞으로 이 문구를 몇 번이나 더 쓰게 될지... ) 두 개의 별개 문제-그러나 그것은 곧잘 하나의 문제가 되어버리곤 한다-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이 현실에서의 실제 살인 사건과 중세 그림 속의 살인 사건이 교차하면서 "누가 기사를 죽였는가?"를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면, 이 책은 한 서적 수집가의 죽음을 시작으로, "삼총사"로 유명한 알렉산드르 뒤마와 또 다른 책, 악마를 부르는 교본이라는 "아홉 개의 문"을 둘러싼 미스테리가 교차하면서 독자들을 궁금증 속으로 밀어넣는다.
결말의 허무함은 뒤로 하고, ... 사실 나는 아무리 멋진 책이라도 결말이 어설프면 지금까지 그 책이 나에게 주었던 매력과 기쁨들을 깡그리 던져버리는 습성이라 그렇게 되서 던져버린 책들이 한두권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렇게 던져버리긴 너무 아까워서.
나는 어려서 한 영화를 보았다. 제목은 "장미의 이름". 영화를 좋아하거나 즐기진 않지만, 주말의 명화시간을 활용하는 나는 그날도 우연히 걸린 영화에 매료되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중세 수도원의 음습한 분위기와, 약간 변태스런 수도승들. 그럼에도 내가 끝까지 버틸 수 있던건, "더 록"이란 영화를 통해-물론 그 이전부터 무척 좋아했던- 숀 코네리 아저씨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그 점을 빼고도 영화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엄격한 수도원장과 살인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주인공의 치열한 기싸움. 그리고 그 배경에 등장하는 멋진 고전!
결국 그것이 움베르토 에코라는 작가의 작품이란 걸 알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다시 접하게 된 그 책은 실로 경탄할 수 밖에 없어서. 책이라는 매체가 가진 가장 큰 매력. 고도의 지적싸움, 두뇌 게임. 이것은 주인공에게 주어진 게임임과 동시에, 그걸 풀어내는 작가, 그리고 그걸 읽어가는 독자에게 주어진 깊이있는 싸움이다.
나는 가벼운 책을 좋아한다. 실제로 내 책꽂이엔 만화책이 절반 이상인데다가, 그 중엔 속칭 BL도 꽤 된다. 거기다 손 닿는 곳엔 라이트 노벨류가 즐비하고....
그런 나지만 가끔 나의 무식함이 만 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고도의 지적싸움과 접했을 때의 즐거움 역시 좋아한다. 나를 그런 신선한 충격에 몰아붙인 책이 바로 "장미의 이름"과 "듄"이란 SF 소설이다. 그 두 책은 내가 얼마나 세상에 무지하며, 얼마나 아는 것이 없는지를 깨우치게 해준다. 그리고 이해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워서, 읽고 읽고 읽고도 머릿속에 물음표가 둥둥 떠다닌다. 그런데도 난 이 책들을, 아직 이해하려 애쓰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까지 포함해서 좋아한다.
이 책이 그랬다. 난 이 책이 수많은 고전들과 -개중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책들도 있었다- 명작들의 이름이 즐비하게 쏟아져 나오면서, 그 것들의 인용구가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또한, '아홉 개의 문"이라는 책이 위작인지 아닌지를 찾아내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많은 책들을 제대로 알지 못한 탓에, 난 또다시 "장미의 이름"에서 느꼈던 절망을 맛보아야 했다.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더니, 틀린말은 아니었다. 에코만큼이나 매력적이고, 어려우며 나에게 고도의 노동을 강요한 책이었다. 사실 나에게 약간의 시간과 여유와 책이 한아름 쌓인 도서관이 주어졌다면, 난 저기에 인용된 책들을 모두 읽어보고픈 충동에 쌓였을 것이다. 학교 도서관이 그리워졌달까. ..... 하아, 이제와서..
중세를 흔히 어둠의 시대라고 한다지만, 뭐랄까 이런 책들을 읽고 있으면 유럽사람도 아닌 내가 중세의 향수를 느끼곤 한다. 사실 웃음이 난다. 내가 보고 있는 중세란, 멍청한 기사들이 갑옷을 입고 말에 타선 당당하게 적의 성문에 돌진하는 어리석음, 그 이외의 뭣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충동을 느낄 때가 바로 "장미의 이름"을 접했을 때였고, 시오노 나나미의 르네상스 관련 서적-정확히 르네상스를 어둠의 중세라고 말하긴 곤란하지만-을 읽을 때 그랬고.
그러고보니 시오노 나나미 역시 나에게 노동을 강요한 작가였다. 난 그녀의 르네상스 저작집을 이해하기 위해, 그녀의 세 책, "신의 대리인",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거의 동시에 읽어내야만 했고,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이해하기 위해, 저 위의 세 책을 다시 독파해야 했음은 물론, 학교 도서관 뒤퉁이에서 썩어가고 있던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메디치가 의 어쩌구~라고 쓰여있던 가계도까지 독파해야만 했다. 덕분에 나는, 의외로 피렌체의 역사엔 꽤나 상세한대다가, 그 주변 공국과 메디치가의 결혼 등을 통한 가계도와 역사 변동, 그리고 마지막엔 프랑스 역사에서의 "피의 일요일"사건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써놓고 보니 한참을 빠져버렸다. 이 책은,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에 비해, 끝마무리는 허술하지만, 그 과정만큼은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보다 훨씬 즐거웠다고 생각한다. 물론 거기엔 체스나 그림보다, 작가의 이름이나 오래된 책들에 흥미를 느끼는 나의 취향도 한몫했겠지만. 꽤 오랜만에 두뇌게임으로서의 독서를 즐겨서인지 왠지 뿌듯하다. 에코의 책은 사실 "장미의 이름"외엔 읽어본 것이 없고, 그를 이해하기엔 내가 멍청한 탓도 있어 그의 다른 저작들을 읽을 용기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책 덕에 머리를 혹사하는 독서의 즐거움을 다시 깨우쳤으니, 한동안 난, 꽤나 머리쓰게 하는 책들에 빠질 것 같다. 그러고보니 장미의 이름도 다시 읽을 계획이었고.. "왕의 귀환" 확장판이 다시 나오기 전에 반지를 다시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한동안 에코에게 밀릴 것 같은데 ^^;;;
덧붙여, 한동안 나의 구입도서 목록 상위엔 뒤마가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든다.
그리고 이건 이런 책들을 읽은 후 내가 느낀 작은 안타까움이라고 해야할까? 요즘 어무이와 함께 근처 책방에 가면 두 사람다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한다. "하아, 읽을께 없어... " 우리 어무이의 경우는 책에 관해서라면 무서울 정토로 탐식하는 사람이라. 물론 유명한 사상서라던가 이런 것은 어무이와 관계 없는 먼나라 책들이지만, 중고교생을 위한 고전.. 등등이란 이름으로 추천되는 서양 고전들은 거의 쓸었다고 무방할 정도다. 거기다, 소위 대하소설로 불리는 책들의 광팬으로 어무이가 구입한 책들은 거의 다.섯.권.이상이란 공식이 있을 정도. 그런 어무이는 요즘 심심해 하고 계신다. 어무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모두 책을 안 쓰고 있는 상태.. 태백산맥, 장길산, 한강, 토지, 임꺽정... 등등 과거와 현재 안방 TV를 점령하고 있는 대작들은 이미 쓸어버린 어무이 (근데 왜 삼국지는 싫어하시는지 원... 아마 조조와 유비 삼형제, 공명과 방추를 빼면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꺼다). 그 옆에서 동조하는 나. 물론 나 역시 취향이 독특해서, 수필류는 안읽는다! 눈물 자극하는 "아버지"류도 안된다 등등의 비틀린 조건도 한몫한다. 한때는 김진명에게 심취했으나, 그의 작품을 세 번째 접하고선 이건 아냐 라고 생각한 뒤로, 그 분이 지금 뭘 하고 계시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
................................. 한 때 정말 너무 즐겁게, 손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면서 읽은 책이 하나 있는데 그건 "영원한 제국"이다. 그 이후, 그 작가분이 책은 하나도 읽은 게 없어서-아마 어무이 취향이 아닌 탓에 구입하지 못한 영향도 클꺼다- 한동안 머릿속에서 잊혀졌었는데. 이 뒤마 클럽을 읽고 나니 다시 그 책이 떠올랐다. 진품인가 위작인가? 영원한 제국 역시, 한 작품에 얶힌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밟아가는 과정 속에서 역사와 상상력이 뒤엉키는 묘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그 책을 읽었던 것이 중 1. 그 후 이런 류의 작품을 만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잡설이지만, Yes24검색을 해보니 저자인 이인화를 우리나라의 움베르토 에코라고 부른 사람이 있다는군- 뭐야, 결국 난 에코선생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 작가분의 박정희 대통령과 독재 찬양등의 위험한 사상이라던가,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접어두자. 나에게 있어 그 책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멋진 활력소였음과 동시에... 왕과 대통령을 동일시 해서 강력한 대통령을 바라기엔 세상을 너무 알아버렸으니까.
동양에도, 우리나라에도 멋진 고전들과 시대를 풍미한 영웅과 철학자들이 있다. 나는 가끔, 나에게 동양의 고전들을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할만한 멋진 책들이 나와주길 바란다. 물론 이 동북아시아는 유교가 판을 친 탓으로 공자님 중심 서적들이 많을테지만, 뭐랄까 어째서 교양이라는 이름 안에 동양의 고전이라던가 동양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이해는 들어가지 않는단 말인가? 우린 그리스 철학과 신화를 잘 안는 사람에게 교양있다라던가, 유식하다라는 말은 해도, 공자님 말씀이나 노자 사상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의 이야기엔 귀기울이지 않는다. 덧붙여, 아무리 에코선생이 중세의 멋진 역사와 철학을 요리해서 책을 써낸다 해도, 어짜피 난 동양사람이다. 내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정략론을 읽으면서도 하나도 감동받지 못한 이유가, 내가 로마사가 당연한 교양인 유럽사람이 아니라, 유비, 관우, 장비나, 불로초에 미쳐 말년에 그것에 집착한 진시황제가 교양인 동양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동양사람이고, 내가 가진 기본 지식을 활용해서 머리싸움을 할 수 있는 그런 멋진 책이 왜 이렇게 찾기 힘든건지. .....
그러고보니 예전 SBS에서 작가 "최인호"씨가 광개토대왕의 비밀을 찾아 떠나는 상상과 역사가 절효하게 결합된 멋진 다큐(?)가 있었는데... 으음... 최인호 아저씨의 책도 조금 뒤져봐야겠군...
... 쓰다보니 잡설의 대 향연이 되었다. 역시 나는 생각한 것의 100분의 일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머저리다. 하긴, 그런걸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작가를 해야겠지. 그리고 어짜피 내가 생각하는 것들 자체가 잡설이니....
어찌되었던 재미없다던 주변분의 말에 비해 나에겐 즐거운 시간을 제공해준 뒤마클럽에 박수를!!
한가지 의문사항>> 요즘들어 심심찮게 문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라던가 문체가 걸려서 넘어가지 않는다 라는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건지.. 난 지금까지 독서란 걸 하면서 어렵다, 이해안간다 하면서 같은 구절을 반복해서 읽은 경험은 있지만... 도대체 걸려서 넘어진다는게 어떤 감각인지... 누구 설명해 주실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