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겼습니다. 독일 언론으로부턴 지금까지의 독일 월드컵 경기 중에 가장 실력 낮은 경기였다는 혹평도 있었지만, 어쨋든 이겼습니다. 이긴다는 건 좋은 일이죠. 특히 첫 경기를 이긴다는 건 자신감을 얻는다는 일이니까 분명 좋은 일입니다.
저야 경기를 중간중간만 봐서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닙니다만, 사실 그리 좋은 경기였다는 생각은 안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겼다는 거죠. 멋진 경기를 80여분간 보여주고도 막판 10분을 버티지 못하고 진 일본의 예를 볼 때, 비록 기대치 이하의 경기였다고 해도 이겼다는 건 중요한 겁니다. 경기는 90분이니까 전반전에 밀린 건 후반에 보충하면 되는거죠. 마지막까지 누가 더 자신들의 힘을 잘 보존하고 효과적으로 발휘하느냐의 문제인거 같아요. 전반에 1골을 먹고도 최선을 다해준 선수분들과 그 중심에 있는 감독님이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도대체 방송국들은 생각이 있는 겁니까? 월드컵의 열기를 살려서 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잡아본다는 기특한 생각으로 벌인 일이라면 웃어줄 수도 있겠습니다만, 시청률 잡기에 혈안이 되서 몸부림친다는 느낌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거기다 각종 기업들, 마케팅 특수를 노리고 싶은 마음이야 잘 알겠지만, 당신들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좀 알아줬으면 좋겠네요. 우리나라의 거리 응원이 전 세계를 감동시킨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나와서 모두 함께 대한민국을 외쳤기 때문인거 아닌가요?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축구 응원에 당신들이 중심이었던 겁니까? 언제부터 한국의 거리 응원이 연예인들의 노래나 춤을 구경하는 장기자랑이 된 겁니까? 당신들이 뭔데 응원을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을 통제하는 겁니까? 언제부터 이렇게 주객이 전도된 겁니까? 거기다 그런 쓸데없는 행사를 벌이겠다고 오후 3시부터 채널을 낭비했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거기다 Kxx, 당신들 정말 국영방송이 맞습니까? 전반전에 한 골 먹은 팀을 다잡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카메라를 밀어붙인 당신들! 정말 존경합니다. 당신들이 그러고도 기자입니까? 당신들이 그러고도 한국 사람 맞습니까? 그렇게 시청률 숫자가 탐이 났습니까? 그런 행동을 하고도 본인이 기자라고 생각한다면, 목 위에 달고다니는 그 머리를 뗘버리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거리 응원 나가서 쓰레기 그냥 버리고 오신 분들;;; 들고오기 귀찮으신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 적어도 민주시민의 기본 자세는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가 아닌가요? 전에 뉴스를 보니 한 환경미화원분께서 "축구 경기가 싫다!"고 하시더군요. 오죽 하면 그러실까요. 당신들의 그런 행동이 한국인 전체의 시민의식을 의심받게 합니다.
하긴, "환경보호 콘서트"를 구경가서는 캭캭 거리기만 하는 일도 있었지요. 명색이 "환경보호" 콘서트인데 공연 후의 그 널부러진 쓰레기의 산이라니;;;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들에 지쳐버렸고... (욕하기 전에 이긴 선수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은 한마디 합시다 ㅜ.ㅡ)
저 역시 우리나라가 정말 잘했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많이 아쉬웠다는게 솔직한 심정이죠. 하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쓰면 어디서 무슨 돌을 얻어맞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전 한국 축구의 실력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 편입니다. 2002년 전까지의 한국은 단 1승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4강은 신화라는 말을 듣는 거 아닌가요? 히딩크 감독님 덕분에 한국 축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홈 경기의 이점을 무시할 수는 없는거죠.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서 선수들을 비난하는 건 어리석다고 봅니다. "볼을 돌린 것"이 이긴 지금의 시점에서는 멍청한 짓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만에 하나라도 졌다면 "볼을 돌리지 않고 돌격!'한 것 역시 멍청한 짓이었을 겁니다. 앞을 내다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승리도 중요합니다. 다들 2002년만 생각하고 잊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원정 단 1승도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2002년의 승리 이상으로 98년과 94년의 패배가 머리에 남아있습니다. 왜 다들 그런 건 잊어버리시고 화려찬란한 승리들만 기억하시는 겁니까?
거기다 히딩크 감독이라면;;; 이란 말이 많이 보이는데, 왜 우리나라 감독 놔두고 남의 나라 감독과 비교하십니까? 히딩크 식 경기가 몰아치기라면 아드보카트 감독에게도 감독 나름의 방식이 있겠지요. 그게 맘에 안든다고 비난하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2002년의 승리로 기대치만 높고, 연이은 감독 경질로 "감독의 무덤"이라는 말까지 들었던 우리팀을 떠맡아, 큰 실수 없이 지금까지 받쳐주고 계신 분입니다. 일본팀 감독은 일본팀을 4년간 맡았다고 하더군요. 그 넉넉한 시간동안 일본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셨겠지요. 그런데도 호언장담과는 달리 패배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팀을 재정비 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 건가요? 이제 막 경기는 시작했고, 첫 승으로 자신감까지 얻었습니다. 이 정도면 시작으로 충분하지 않은 건가요? 왜들 그렇게 첫 술에 배 채우려는 분들이 많으신 겁니까? 제발 어설픈 해설과 평가는 그만 둡시다. 도대체가 한국은 왜 이렇게 비공식 전문가들이 많은 건지.
전 적어도 나대는 대다가 잘되면 내 탓, 안되면 선수탓을 하는 본프레레 감독보다는 모든 걸 자신의 책임이라고 떠맡을 줄 아는 감독님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본프레레 따위를 감독으로 데려온 축구협회는 저주스럽지만, 그래도 막판 결단으로 제대로 된 감독을 모셔왔다는 것만은 칭찬해 주고 싶을만큼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
시청자에겐 채널 선택권이 있습니다. ......... 축구를 싫어하는 사람은 도대체 뭘 봐야 하나요? 비슷한 내용의 방송을 며칠 동안 모든 공중파에서 봐야만 하다니. 이것 역시 공중파라는 국가의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는 거 아닙니까? .... 다음 경기 시작할 때까지는 토고전을 계속 돌려봐야 할테고;; 2차전 앞두고는 또 방송국의 형편없는 응원쇼를 봐야하고. 드라마 같은 건 안 해줘도 좋으니까, 제발 뉴스만이라도 제대로 해줘요 OT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