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작은 집에는 나이든 개가 있다. 이름은 초롱이. 내 기억에 의하면 성깔 더럽고, 사람 알기를 지 아래로 아는 아주 기세등등한 개였다. 그에는 우리 작은 엄마의 엄청난 초롱이 사랑도 한 몫 했다. 엄마의 무한 애정에 이 놈의 강아지는 천상천하 엄마와 저만 있는 아주 대단한 강아지였다.
그러고 보니 더 어렸던 초딩 시절 우리 큰 집에도 강아지가 있었는데, 이 녀석 성깔도 한 몫했다. 소파에 지정석이 있어서 쟤 지정석에 누군가 앉으면 그 꼴을 못 보는 한 성깔 하는 개였다. 큰 댁에 갈 때마다 우린 그 쪼매난 강아지 때문에 기를 못 펴곤 했다. 그 정도로 한 성질 하셨다. 그런 탓에 큰 집에만 가면 작은 엄마는 집에서 개를 키운다는 둥, 개새끼가 너무 시끄럽다는 둥, 냄새 난다는 둥, 집에서 개 키우는 사람 자체를 이해 못하겠다고 하셨다. 솔직히 그 점에는 좀 공감했다. 개는 귀엽지만, 귀찮다. 어렸던 나는, 개라는 동물이 그저 짖기만 하는 무서운 동물이었을 뿐이다.
그런 작은 엄마가 집에 개를 키운다. 놀랠 노자였다. 작은 엄마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개를 키운다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던 작은 아버지 역시 초롱이라면 이뻐 죽는단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문 앞에서 꼬리치고 반기는게 어찌나 이쁜지 모르겠다나. 그 기분은 알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요란한 강아지 사랑에 좀 질렸달까 황당했달까. 그렇게 욕을 하던 사람이, 우리 초롱이가 세상에서 제일 이쁘다며, 그 작은 걸 때릴 곳이 어디있냐.... 비싼 애견용품에, 본인 샴푸보다 더 비싼 샴푸를 초롱이가 쓴다며 자랑할 때, 우리 엄마와 난 조소를 금치 못했다. 가지가지 한다. 그러게 사람은 언제 입장이 바뀔지 알 수 없는 법. 평소에 입조심을 해야한다며 울 엄마는 내게 견본을 보며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며 설교하셨다.
그런 초롱이, 어제 보니 참 많이 달라졌다. 낯선 사람 근처엔 곁도 안 주던 도도한 녀석이, 이리 오라는 내 손길에 머리를 기댄다. 쓰다듬는 내 손길에 귀찮아 하면서도 그냥 있더라. 기가 많이 죽었다. 사람 눈치를 본다. 작은 엄마 뒤만 졸졸 쫓아다니지만 눈 마주치면 도망친다. 슬쩍 얘기했더니, 작은 엄마가 초롱이가 귀찮단다. 손자가 생기고 나니, 저놈의 개가 왜 이뻣는지 모르겠다나. 아프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며, 악담을 쏟아낸다. 지금도 초롱이를 이뻐한다던 작은 아버지 역시 병 들면 안락사 시키면 된단다. 충격이다.
올 봄 내가 애정을 가지고 보던 웹툰이 있었다.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라고. 말 그대로 작가가 본인의 이야기를 기초로 그린 만화다. 한쪽 눈이 안 보여서 안락사 당할 뻔한 어린 고양이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서 늙어버린 개와 함께하는 이야기. 이 웹툰 역시 정든 개와의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며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읽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더 개를 키우기 싫어졌다. 늙어서 피부병 때문에 털도 없고, 눈도 멀고, 귀도 안 들리는 강아지를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귀찮아지면 버리는 거 아닌가. 생명이라는 것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이 "개나 키울까?" 하는 어리석은 말을 못하게 한다. 워낙에 집에만 쳐박혀 있는 스타일이라 가끔 외롭기도 하고, 그래서 따뜻한 온기가 필요하지만, 마트에 가면 애견 코너에서 넋 놓고 강아지들을 쳐다보기도 하지만, 난 아직 하나의 생명을 책임질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와 우리 남편의 언젠가 개를 키워보자는 꿈은 또 뒤로 미뤄진다.
남자의 자격에서 유기견이라는 말을 듣고 상처받을 꺼라며 그 말을 할 때마다 귀를 가려주던 김성민이 생각난다. 그거 보며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초롱이를 떠올려 본다. 나갔으면 좋겠다. 아프지도 않는다. 나중에 안락사 시키면 된다는 말을 주어들었을 녀석을 떠올려 본다. 사람도 그렇지만, 개 역시 기가 죽으니까 처량하고 청승맞다. 안쓰러워 하는 나를 보며 작은 엄마는 나보고 가져가란다. 그래도 10년을 키웠는데.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란 시간이 이렇게 무의미 한건가? 하긴, 그게 그렇게 의미 있는 시간이라면 그렇게 버림받아 떠도는 유기견들이 사방에 널려 있지는 않겠지.
하루란 시간이 흘렀는데, 눈에 초롱이가 밟힌다. 안타깝다. 난 아직 한 생명을 책임질 자신이 없다. 그러므로 오늘도 소중한 인연에 대한 꿈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책임감 없이 떠맡고 무책임하게 버리고 싶지 않다. 그런 마음이 생기기 전엔, 절대로, 절대로 반려견이냐 반려묘는 거둘 생각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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