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삽질인생

그녀는 수능시험날 무슨 짓을 했던가?

띵.. 2005. 11. 20. 19:35
이것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히 전하는 제 삽질기록입니다. 이런 망측스러운 것을 적어두는 이유는.......... 이번에 또 다시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의이자 수능을 처음으로 앞두고 긴장하고 있을 고 3 수험생 여러분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섭니다. (덧붙여 약간의 현실도피)

그러니까 그녀는 수능 시험날 무슨 짓을 했냐하면.........................................................


잤습니다.

...쉬는 시간 중에도 아니고, 점심 시간도 아니고 실제 시험시간에 잤습니다. 눈뜨고 일어나니 세상이 참 까마득 하더군요 (.. )a ;;;;;;;

우선 ... 밝히면 나이가 뽀록 나기 때문에(뭐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나이이지만) 정확히 연도는 말할 수 없고, 잡작스럽게 수능이 쉬워져서 수험생 모두에게 잠깐의 기쁨과 그 뒤에 끝없는 나락을 선사해주었던 "물수능" 첫 세대입니다. 이해찬 세대만큼은 아니어도, 저 역시 저 물수능 덕에 꽤나 아픔을 겪었답니다. 언어영역 평균이 한꺼번에 43점이 올랐으니 알만하지요.

저는 영어랑 수학은 아주 못합니다. 둘이 합쳐 160점 만점인 수탐 1과 외국어 영역의 점수가 120점 만점인 수탐 2의 점수보다 낮았어요. 아니 뭐, 본래 수탐 2에서 조금 강하긴 했지만, 그걸 빼고라도 수학과 영어는 ..... 최저레벨이기 때문에 대학에 가려면 어떻게 해서든지 저 수탐 2에서 죽어라 점수를 따놔야만 했습니다. 거기다 이과는 수학과 과학에 가산점이 있기 때문에 수학에서 잃은 점수는 어떻게 해서든 수탐 2에서 만회해야 하구요. 자신도 있었고, 기합도 단단히 들어간 상태였습니다만................

그렇게 중요한 수탐 2 시간에 전 잔 겁니다. 자고 말았어요. 본래 추위를 많이 타는 성격이라 손발이 얼어서 수험을 망칠 수 없다는 생각에 내복을 몇 겹이나 껴입고, 복장도 학교 체육복을 입고 수험장에 기어들어갔는데 하필이면 제 자리가 히터 옆이었던 겁니다. 안 그래도 모의고사 때는 자다 일어나서 푸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실전에서까지 그러리라곤.
아 너무 졸려~ 하고 꾸벅거리다 눈을 떴는데 남은 시간은 겨우 20여분! 그런데 아직 과학문제도 다 풀지 못했;;; (겨우 반 정도 풀었달까). 어떻게 다 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과목은 평소에도 미친 듯이 풀어대서 15분만에 다 풀었던 적이 없던건 아니지만, 20분동안 남은 과학문제(그것도 물리!!!!)를 풀고 사회 해결하고 마킹하고.
여기서 끝나면 좋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예비마킹을 못했더니 마킹을 잘못한겁니다. 그래서 답안지를 바꿨는데 또 틀리고... 그랬는데 이번엔 밀려서 마킹! OTL 하늘은 노랗고 눈 앞은 아찔아찔~ 선생님 틀렸는데요... 라니까 선생님이 차마 대놓고 말은 못하시고(수험생이니까) 답안지 떨어졌다면서 교무실까지 내려가서 새 답안지를 구해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 이번엔 수험표 마크를 잘못한겁니다. 아주 잘못 칠한건 아니고 손이 미끄러져서 제 마킹 번호 위에 살짝 점이 찍혔어요. OMR 카드에 있는 잘못표기의 예시처럼 딱 됐는데 차마 답안지를 바꿔달라지 못하겠고 해서 그냥 우선 제출하고 시험 끝나고 말하러가자 라고 결심 어찌어찌 제시간에 (정말 딱 제시간에!) 제출은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수험표에 자기 답은 다 체크하고 온 이 집념 ㅡ.ㅡ b)

시험 다 끝나고 교무실에 내려갔더니 ... 아뿔사! 출입금지인겁니다. 저랑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학우도 수험표를 잘못 체크했다고 왔는데 둘이서 울며불며 매달려도 교무실 문은 열리질 않는 겁니다. 마침 지나가던 옛 우리학교 선생님. 저희를 2년이나 가르치신 터라 얼굴도 알고 계셔서 둘이서 꼭 붙들고 안 놔주며 "선생님!! 제발 교무실 좀 들어가게 해주세요 ㅠ.ㅜ" . 그 모습이 처절했는지, 선생님께서 내가 알아봐주마라고 들어가셨는데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답안지는 다 체크했다고 한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렴. 이 상냥한 말투, 그렇지만 이 정도로 안심할 수 있을리 없죠. 저 때문에 무고한 한 학우도 같이 인생 종치게 생겼는걸요. "눈으로 봐야한다"고 박박 우겨도 봤지만, 선생님께서도 "벌써 수리 2는 답안지를 묶어서 보냈다고 하는걸"
........ 오 마이 가뜨! ㅡ.ㅜ

전 채점을 마치고 다음날 담임선생님께 점수를 적어내며 속으로 외쳤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전 재수 확정이에요>. 수능 끝난 다음날의 그 난장판인 교실에서, "성적이 안 좋아"라며 울고 있는 친구들 옆에서 차마 "난 수험번호 잘못 써서 재수해야되"라는 말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고만 있었습니다. ..... 남 몰래 재수 준비도 하고 ^^;;;

그렇게 한 달간 쓰린 속을 부여잡으며 지냈습니다. 성적표 나오기 전날은 꿈도 꿨는데 담임 선생님이 건네주신 제 성적표엔 빨간 글씨로 수리탐구 2 빵점 이라는 글씨만 커다랗게 쓰여있더라구요. 그런 악몽을 꾸고선 찹찹한 맘으로 집을 나섰는데...
받아본 성적표는 다행히도 빵점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너무 감격해서 엉엉 울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덕분에 반 녀석들이 "제 뭔일 있는거야?"라며 흘낏흘낏 쳐다보고. 여하튼 성적표 받고 너무 감격해서 배치표 보고 바로 뛰쳐나가 원서사오고 그 자리에서 원서 쓰고 담임 결제받고 뚜뚜뚜뚜 해서 일사천리로 특차 원서 작성 끝에 모 대학의 어쩌구 과에 입학하게 되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잔 것도 한심하고, 허둥대서 마킹 틀린 것도 웃기고, 여기다 수험표 잘못 체크한 건 더 바보같고. 선생님을 부여잡고 엉엉 울며 하소연 한 것도 참.... <인생이란 코메디구나>하고 생각하게 해주는 몇 안되는 멋진 장면이죠. 사실 그 때야 수능 성적이 무엇보다 절박한 것이고, 재수라는 건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맞는 듯한 것이었으니, 저도 참 철없고 순진했습니다. 이 얘기를 시험 앞둔 사촌동생들한테 하니까 박장대소를 하면서 <에이, 설마~> 라고 하더군요.
당시야 정말 불안해서 매일 가위에 눌릴 정도였지만, 지금은 기운 빠지거나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마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서 웃곤 합니다. .... 설마 또 자겠어? 수험표 잘못 써서 빵점 받는 것만 하겠어? 라구요.
혹시나 이 글을 읽고 계신 수험생 여러분. 농담같죠? ㅡ.ㅡ;; 평소에 선생님들이 "모의 때 자는 놈들이 꼭 수능 가서도 잔다"라던가 "모의 때 진지하지 않은 놈들은 수능가서도 그런다", "모의 때 실수하는 거 꼭 똑같이 저지르는 바보는 되지 마라"라고 하는데. 그거 진짭니다. 모의 때 자는 놈은 꼭 수능에서도 자요. 절 보십쇼 ( ");; 확실한 예죠.

추위를 많이 타고 난방이 걱정되는 분들은 옷을 두껍게 입되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여차하면 벗을 수 있게 입으시는게 좋아요. 그리고 모의 때 졸았던 분들이라면 정신 바싹 차리고, 점심 식사 후엔 정신을 맑게 할만한 차 같은 걸 마시는게 좋습니다. 공부를 안했다던가, 문제를 착각했다던가라면 차라리 귀엽죠. 졸았다가 시험망치면 웃음꺼리도 안 됩답니다!

....여기까지 시험 당일 수험생이 저지르면 안되는 가장 나쁜 실수!
이상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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