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Story/삽질인생

코다와리

띵.. 2007. 4. 3. 16:53

음... 뭐라고 써야할지 몰라서, 집착... 신경쓰임? 사실 우리말로는 나의 이런 병세를 뭐라고 표현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집착이라고 하긴 가볍고, 신경쓰임이라고 하긴 무거운. 그래서 일본어를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항상 이 부분에 관해서는 "코다와리"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나는 "코다와리"를 가지고 있다. 뭐 여러가지 분야에서 약간 병적일 정도로 발휘되곤 하지만,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물건 배치다. 책상엔 항상 같은자리에 어떤 물건이 있어야하고 (이건 정리되고 안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배치된 그 물건의 자리같은 문제다), 책은 가지런히 크기를 맞춰서 꽂아야 하고. 전기 콘센트나 플러그는 손이 닿는 위치에 있되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아야 하고, 창을 막는 위치에 가구를 놓아서는 안되고. 창문에는 펄럭이는 커텐은 안되고.
이런 것들이 사실 조금만 어긋나도 신경이 그쪽으로만 쏠려서 정신이 집중이 안된다. 다행히도 이런 병적 증세들은 내 물건, 내 방, 나만의 공간이라는 것에 한정되어 발휘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책상을 어떻게 쓰건, 책꽂이를 어떻게 쓰건 내 영역만 침범하지 않으면 상관안하는 편이다. 남에겐 그 사람만의 "코다와리"가 있기 마련. 나랑 서랍을 반대위치에 넣던, 종이를 책상위에 쫙 깔아놓던... 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남이 내 공간에 손을 대는 것, 그것도 내가 집착하고 있는 부분을 망가트리는 건 참을 수 없다.

어제, 부모님이 내 방에 에어콘을 설치해주셨다. 분명 기뻐해야할 일이겠지. 하지만, 실외기 하나를 가지고 2층 방과 건너편 거실을 사용하기 위해 내 눈에 심히 거슬리는 위치에 이놈의 것이 설치가 된 것이다.
이 위치라는 것이 하필이면  침대위 창문 바로 위.
......... 난 바람을 싫어한다. 습기찬 인공바람은 더더욱 싫어한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콘 바람을 직접 받아본 적이 없다. 그걸 머리맡에서 받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 습기찬 공기를 내가 너무나 아끼는 미니콤포가 맞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내 미니콤포는 우퍼가 위를 향하고 있다. ...... 그래, 침대랑 미니콤포는 옮긴다고 치자.

우선 커튼(정확히는 롤스크린)을 막고 있다. ... 롤스크린을 막으면 기계로 인해 정말 우스운 모양새가 된다. 그렇다고 아래에 커튼을 달자니, 에어콘이 창틀 바로 위에 딱 붙어있기 때문에 설치할 수가 없다. 울 어무이는 끈을 매서 천으로 된 커튼을 달자고 하시지만, 난 천 커튼을 무진장 싫어한다. 자고로 천 커튼이란 거실의 큰창등에 질질 끌리게 다는 것이지 자그마한 방 창문에 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양쪽 커튼 틈 사이로 빛 새어들어오는 거나 바람에 흩날리는 거나 너무너무 맘에 들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내 창문 왼편은 벽에 딱 붙어있기 때문에 끈을 맬 수가 없어서 커튼이 항상 너덜너덜 흩날리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플러그는 어떤가, 이놈의 것이 조금 어설프게 매달리는 바람에 플러그를 아무리 늘어뜨려도 공중에 뜬다. 내가 침대근처에 놓은 가전제품이 총 4개. 여기에 에어콘까지 설치하면 멀티 플러그를 설치해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멀티플러그의 그 육중한 몸체가 공중에 뜬 채로 여기저기 흔들거리는 모양새가 되야한다.

............이게 뭐야. 하나같이 맘에 안 들잖아. 그래서 뭐야, 신경에 자꾸 거슬린다고. 아침부터 집요하게 그 얘기만 한다고 뭐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잖아. 어젠 11시 넘어서 들어왔고, 엄마는 자고 있었고. 그렇다고 일주일 뒤에 얘기할까? 그럼 이거 언제 처리되는건데? 아빠는 먹고 살겠다고 새벽같이 상주로 출장갔는데 넌 아침부터 속을 뒤집어 놓냐구? 그럼 뭐야, 방에 딱 들어와서 그 꼴을 본 나는 맘이 편했는 줄 알아? 전화했는데 니가 안 받아서 그렇게 설치했다구? 내가 전화받았으면 다른데 설치했을꺼야? 아니잖아. 옛날부터 그런 거 귀찮다고 다 엄마식으로 우겼잖아. 일하는데 그런 전화 걸어서 그럼 어떻게 해? 라고 하면서 결국 거기다 걸었을꺼 아냐.
하다못해 토요일날 하면, 나도 볼 수 있었잖아. 구집시고 월요일날 설치한 건 엄마잖아.

설치기사 다시 불러서 니가 이렇게 잘못 설치해놨으니 무조건 다시 설치해줘야 한다면서 내가 우겼을 때 뭐라고 했어? 엄마가 그냥 그렇게 설치하도록 놔뒀다고 했잖아. 왜 멋대로 그렇게 했는데. 내가 그 스크린 얼마나 맘에 들어했는지 알면서 그렇게 해놓으면 어떻게. 앞으로 얼마 살지도 않을 집, 그깟 커튼에 뭘 그렇게 신경쓰냐구? 커튼 없으면 집이 썰렁하다고 전에 살던 집 커튼 놔두고 새집 커튼 산 것도 엄마야. 그리고 아빠한테 옮겨달라고 하라고? 아빠가 그걸 어떻게 하나고 말해놓고 그게 말이돼? 하나같이 앞뒤가 안 맞잖아.


그래, 내가 배부른 투정 한다. 다른 사람들은 에에콘 없는 집도 많은데 방에 개인 에어콘 설치해줬더니 배부른 줄도 모르고 투정한다. 그렇지만 난 말야. 내 돈으로 선풍기를 쓰는 편이, 방을 그렇게 멋대로 엉망진창 만들어놓고 에어콘 쓰는 것보다 편해.

공중에 붕 떠서 흔들거리는 커튼에, 머리 바로 위에 빠싹 얹어진 에어콘에, 위에서 덜컹거리는 플러그를 보고 있는 것보다도 편하다고.

........ 줴길. 내가 이번달 월급 다 날리는 한이 있어도 저 에어콘 반품시켜 버릴테다.


정말이지 너무들 무신경하잖아... 내가 가구배치에 얼마나 신경쓰는지 알면서. 왜 하필 내가 없을 때 에어콘 설치 기사를 부르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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