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아까까지 컴퓨터를 켰을 때만 해도 엉엉 울면서 막 뭐라고 욕을 쓸까, 뭐라고 쓸까 많이 고민했는데, 유과 양이랑 통화하면서 그런 기분이 많이 날라갔다. 통화시간 1시간 50분... 이거 케익 가지고는 커버가 안되겠는데?
.....하루에도 수십번씩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다가도,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서, 또는, 내가 이거 그만두면 뭘 하겠어, 그래도 나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라고 생각하며 마음 다잡곤 했다. 물론, 하루하루가 즐겁기도 하다. 아주 좋은 사람들, 아주 친한 사람들과 웃으며 일 할 수 있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현장 근무를 지원해볼까 했다. 근데, 그건 아무래도 물 건너 갈 것 같다. 한 사람이 그만두는 바람에 일손에 큰 구멍이 뚫렸다. 거기다 그 사람이 맡은 출판사가 우리 회사에서도 가장 큰 출판사이기에, 그 공백은 어마어마 할 것이다. 대타로 내가 가장 유력하다. 전부터 이런 날이 올까 두려워서 그만두겠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훗, 월급만 올려준다면 내 당장 하겠소, 라고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그런 생각 안해본 것도 아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여기 한 발, 저기 한 발, 곁다리 인원이 되어버린대에는, 내가 눈에 확 띄는-전시효과가 있는 일을 맡고 있는 게 없어서란 생각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출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은 하고 있지 않지만, 난 내 나름대로 소소하지만 중요한, 각종 데이터 체크를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하고 있다. 할 사람이 나 밖에 없기도 했고, 그 메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도 나 밖에(설마 지금도 그런건 아니겠지) 없었다는 상황도 있고. 출고 전표의 출고 여부 확인이라던가, 입고 미처리 전표의 확인과 같은 데이터 검정이야 말로 전산재고와 실물 재고를 맞추는 가장 기본적인 검증작업이고, 이렇게 하나하나 꼬여가면 더더욱 부풀어버리는게 전산이라고 생각했기에, 지겹지만 매일매일 체크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런 걸 하고 있다는 걸 누가 알고 있을까?
가끔 궁금한게,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는 대략적으로 다 알려져 있는데,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일이란, 시키지 않아도 해야한다고, 그런 사람이야 말로 회사에 진정으로 필요한 인재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기 위해선, 시키지 않아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보수가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너 무슨 일을 하는거냐? 상태가 되어버리면 일 하고 있는 나도 참 많이 곤란하다.
기본적으로 난 호기심이 강하다. 배우고자 하는 욕심도 많다. 뭐든 완벽하게 하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쓰고 있는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에서 내가 모르는 부분, 사용할 수 없는 메뉴는 단 하나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닥치는 대로 배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행동들이 모두 후회가 된다. 알면 일이 되는 회사. 하나를 더 알 수록 그만큼 "네가 해!"가 되어버리는,... 덕분에 난 지금 회사 업무 관련해서 배우고자 하는 의욕을 잃었다. 관심도, 호기심도 없다. 예전에는 내가 모르는 일이었어도 "잠깐만, 내가 알아보고 전화 다시 줄께요"였지만, 지금은 "그거 내 일이 아닌데? 난 몰라요.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세요"가 되어버렸다. 되고 싶지 않았는데, 되어버렸다. 그만큼 지쳐버렸다.
얘기가 많이 엇나갔는데, 사실, 그 모 출판사, 그거 떠맡고 다른 일은 다 던져버릴까 하고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거 맡게되면, 그 핑계로 현장 전화도 다 돌려버리고, 지금 맡은 일은 못한다고 나자빠지고. 물론, 그 회사 출고가 내 손에 걸렸기에, 그거 핑계로 여기저기 돌려지는 일도 막을 수 있고. ....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얻어지는게 뭐지? 하는 생각도 든다.
배우고 싶다, 강해지고 싶다. 어려운 일을 맡고서 그걸 해결함으로써 한발한발 성장하는 내가 보고 싶다. 이씨! 이거 왜 이렇게 안돼! 하며 울분을 터트리다가도, 나중에 그걸 해결하고 나서 그런 내 자신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일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때는 이런 때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완벽주의자인 것도, 유능한 것도, 잘난 것도 아니다. 다만, 일을 못한다는 소리만큼은 듣고 싶지 않다. 이건 누구 아니면 못 맡겨... 같은 거 기대도 하지 않지만, 그래도 사고치지 않는다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 같다. 그렇게 맘 먹고 날 채찍질했다. 그 결과, 성격이 괴팍해서 실수는 용서치 않고, 그 자리에서 막 성질피우는 나한테 다시 또 일을 맡겨준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그런 현장의 마음이 너무 기뻐서, "이건 누구씨한테 맡기는게 제일 확실하잖아"라는 말에 속아, 하루하루 버텼다.
그렇지만, 이제 그건 아닌 것 같다.
내가 도맡아 한다고, 환경이 개선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없다고 뭐 크게 잘못되는 것도 없는데, 왜 내가 이렇게 아둥바둥해야하는 거지? 난, 내 자신을 너무 특별하게 여긴 것 같아. 유과 양은 미련이라고 했지만, 아니, 그게 아닌 것 같다. 난 내 자신이 "이 회사에 없어선 안될, 특별한 존재"라고 인식해버린 거야.
난, 특별하지 않아. 난 대단하지 않아.
따라서 내가 없어서 회사가 멈추지 않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누군가 한 사람이 일이 느리다고, 못한다고 속 터져야 할 일도 없고 - 세상 모두가 나처럼 일에 편집증을 가진 건 아니니까, 일이 산떠미처럼 밀려온다고 힘겨워 할 필요도 없고, 전산오류는 마치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안달할 필요도 없어.
내일은 진지하게 내 심경의 변화에 대해서 심층토론이라도 해볼까?
안 그래도 대리님이 날 부르실테지. 니가 해야하지 않겠니라고.
훗, 아무래도 좋아, 다 내 관심 밖이야.
출판사 하나도 맡으라고 그러고, 앞으로 매달 있을 실사내역도 정리하라고 그러고.
컨설팅 자료도 뽑아야 하고. 회송에, 입고에, 입출고 진행사항도 체크해야하고.
........ 난 초인이 아냐, 그리고 내가 꼭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냐.
난 특별한 사람이 아냐.
난 전혀 특별하지 않아.
그러니까 이제 정신차려.
정신 좀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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